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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상장례

전통상례(喪禮)는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고 땅에 묻힌 다음 담제(禫祭)·길제(吉祭)를 지내는 것으로 탈상(脫喪)하게 되는 3년 동안의 모든 의식을 말한다. 상례는 관혼상제의 의례 중에서 가장 엄숙하고 정중하며 그 절차가 까다롭고 이론(異論)이 구구하다. 상례는 예기(禮記)에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옛날부터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거하여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 준수되어왔다.

전통상례는 임종(臨終)-수시(收屍)-고복(皐復)-발상(發喪)-전(奠)-습(襲)-소렴(小殮)-대렴(大殮)-성복(成服)-치장(治葬)-천구(遷柩)-발인(發靷)-운구(運柩)-하관(下棺)-성분(成墳)-반곡(反哭)-초우제(初虞祭)-재우제(再虞祭)-삼우제(三虞祭)-졸곡(卒哭)-부제(祔祭)-소상(小祥)-대상(大祥)-담제(禫祭)-길제(吉祭)-개장(改葬) 등의 절차를 거치는데 매우 복잡하다.

초종은 임종(臨終)에서 전(奠)까지의 상례절차를 말한다. 임종은 운명(殞命)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이 죽을 때를 말한다. 평상시에 거처하던 방을 깨끗이 치우고 환자를 눕힌 다음 이불을 새것으로 바꾸고 옷도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힌다. 그리고 집 안팎을 모두 깨끗이 청소한 다음 조용히 앉아서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린다. 이때 환자의 머리를 동쪽으로 하여 북쪽에 눕힌다. 숨이 끊어지면 먼저 눈을 감기고 깨끗한 솜으로 입과 귀와 코를 먼저 막고 머리를 높고 반듯하게 괸다. 시체가 굳기 전에 손발을 고루 주물러 편 다음 남자는 왼손을 위로,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하여 두 손을 한데 모아 백지로 묶고, 발도 가지런히 하여 백지로 묶는다. 백지로 얼굴을 덮은 후 칠성판(七星板) 위에 눕히고 홑이불을 덮는다.

이 절차는 아주 정성껏 해야 하고, 소홀히 하면 수족이 오그라들어 펴지지 않아 염습(殮襲)할 때 문제가 된다. 이것이 끝나면 곡(哭)을 하는 집도 있으나, 대체로 고복이 끝난 뒤에 곡을 한다. 뜰아래나 대문 밖에는 사잣밥을 차려놓는데, 밥상에 밥 세 그릇, 술 석 잔, 백지 한 권, 명태 세 마리, 짚신 세 켤레, 동전 몇 닢을 얹어놓고 촛불을 켜놓는다. 이 사잣밥은 임종한 사람을 데리러 온다는 저승사자를 대접함으로써 고인을 편하게 모셔가 달라는 뜻에서 차리는 것이다.

고복은 남자의 초상에는 남자가, 여자의 초상에는 여자가 죽은 사람의 상의를 가지고 동쪽 지붕으로 올라가, 왼손으로는 옷의 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의 허리를 잡고서 북쪽을 향해 옷을 휘두르면서 먼저 죽은 사람의 주소와 성명을 왼 다음 “복(復)! 복! 복!”하고 세 번 부르는 것을 가리킨다. 다른 말로 초혼(招魂)이라고도 한다. 이는 죽은 사람의 혼이 북쪽 하늘로 가고 있다고 하여 혼이 다시 돌아오도록 부르는 것으로,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아야 비로소 죽은 것으로 인정하고 곡을 하는 것이다. 이때 죽은 사람의 벼슬이 있으면 모관모공(某官某公)이라고 벼슬·이름을 부르고, 벼슬이 없으면 학생모공(學生某公)이라 한다. 안상[內喪]에는 유인모관모씨(儒人某官某氏)라 부르고, 만약 남편이 벼슬이 있으면 모부인 모관모공(某婦人 某官某公)이라 부른다.

발상이란 초상난 것을 발표하는 것을 말한다. 우선 상주(喪主)와 주부(主婦)를 세우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큰아들이 상주가 되지만 큰아들이 없을 때는 장손(長孫)이 상주가 된다. 또 아버지가 없고 형제만 있을 때는 큰형이 상주가 된다. 주부는 원래 죽은 사람의 아내이지만 아내가 없으면 상주의 아내가 주부가 된다.

다음으로 호상(護喪)은 자제들 중에 예법을 하는 사람으로 정해서 초상일을 모두 그에게 물어서 하게 한다. 다음 문서를 맡는 사서(司書)나 재물을 맡아 처리하는 사화(司貨)는 자제들이나 이복(吏僕)들 중에서 정한다. 전이란 고인을 생시와 똑같이 섬긴다는 의미에서 제물을 시신 동쪽에 놓인 제상 위에 집사자가 포와 젓갈을 올려놓는다. 다음으로 축관(祝官)이 손을 씻고 잔에 술을 부어 제상 위에 올린다. 이런 일들을 집사가가 대신하는 것은 모든 초상 범절에 주인이 슬퍼해서 일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호상이 목수를 시켜서 관(棺)을 만들게 한다. 관을 만드는 재료로는 유삼(油衫)이 제일 좋고 그 다음이 잣나무이다. 천판(天板) 하나 지판(地板) 하나에 사방판(四方板)이 각각 하나씩 필요하며 높이나 길이는 시신에 따라 약간 여유 있게 하고, 두께는 세 치 혹은 두 치 반으로 한다. 그 후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부고(訃告)를 보내는데 임종에서부터 이 절차까지를 초종(初終)이라 한다.

습(襲)은 시체를 닦고 수의(壽衣)를 입힌 뒤 염포(殮布)로 묶는 절차인데 다른 말로 염습(殮襲) 또는 습렴(襲殮)이라 한다. 먼저 향나무 삶은 물이나 쑥을 삶은 물로 시신을 깨끗하게 씻기고 수건으로 닦은 후에 머리를 빗질하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머니에 넣는다. 이것은 대렴(大殮)을 할 때 관 속에 넣는다.

이것이 끝나면 시신을 침상에 눕히고 수의를 입히는데, 옷은 모두 오른쪽으로 여민다. 수의는 비단·마직·베 등 자연소재로 윤년이나 윤달을 택해 준비해두고, 수의를 바느질할 때에는 가시는 길에 막힘이 없으시도록 실의 매듭을 짓지 않는다. 다음으로 습전(襲奠)이라 하여 제물을 올리고 주인 이하 모두가 자리에서 곡한다. 이어 반함(飯含)이라 하여 시신의 입속에 구슬과 쌀을 물려주고 염습의 절차가 끝나면 이불로 시신을 덮는다. 이를 졸습(卒襲)이라 한다. 이때 화롯불을 피우고 영위(靈位)를 모시는 자리인 영좌(靈座)를 꾸민다. 영좌는 먼저 교의를 놓고 위에는 혼백(魂帛)을 만들어 얹고 명정(銘旌)도 만들어 세워놓는다. 교의 앞에 자리를 깐 다음 제상을 놓는다.

제상 앞에는 향탁을 놓고 그 위에는 향합과 향로를 놓고, 향탁 앞에는 모사 그릇을 놓는다. 이 의식이 끝나면 친족·친지들이 들어가서 곡한다. 혼백은 너비 한 폭에 길이 1자 3치(약 40cm)인 흰색 비단·마포·백지 등을 접은 뒤 오색실로 만든 동심결(同心結)을 끼워 만들어 혼백함에 넣어 교의 위에 모시는데, 밤에는 덮어서 눕혀두고 낮이면 열어 세워둔다. 혼백은 장례 후 2년 동안 빈소에 모셨다가 대상을 치른 뒤 묘소에 묻는다. 명정은 길이 2m 정도의 홍색 비단에 흰색 글씨로 남자는 ‘모관모공지구(某官某公之柩)’, 여자는 ‘모봉모관모씨지구(某封某貫某氏之柩)’라고 쓴다. 명정은 긴 장대에 달아 출상(出喪) 전에는 여좌의 오른쪽에 세워두었다가 출상 때에는 영구 앞에서 들고 간다. 소렴이란 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말한다.

소렴은 고인이 죽은 다음 날 아침에 날이 밝으면 집사자가 소렴상과 시신을 묶을 베·이불·옷 등을 준비하고 제물을 올린 후에 시작한다. 시신을 소렴상에 눕히고 옷을 입힐 때는 왼편으로부터 여미되 고름은 매지 않으며, 손은 악수(握手)로 싸매고 멱목(幎目)으로 눈을 가리고 폭건과 두건을 씌운다. 다음 이불로 고르게 싼 다음, 장포 두 끝을 찢어 각각 매고 속포(束布)로 묶는다. 이때 속포 한쪽 끝을 세 갈래로 찢어서 아래로부터 차례로 묶어 올라간다. 소렴을 한 후에 상주는 서쪽을 향해, 주부는 동쪽을 향해 통곡한다. 영좌 앞에 나가 습전을 치우고 새 전을 펴고, 전 앞에 분향하고 잔을 씻어 술을 부어올린다. 이때 상주는 절하지 않으며, 대곡(代哭)하도록 한다.

대렴이란 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입관(入棺)하는 의식으로 소렴을 한 이튿날에 한다. 날이 밝으면 집사자는 탁자를 가져다가 방 동쪽에 놓고, 옷 한 벌과 이불 둘을 준비한다. 시신을 맬 베는 세로는 한 폭을 셋으로 쪼개서 소렴 때와 같이 하고 가로는 두 폭을 쓴다. 다음으로 관을 들여다가 방 서쪽에 놓고 입관하는데, 이때 자손과 부녀자들은 손을 씻는다. 제물을 올리는 것은 소렴 때와 같다. 대렴금으로 시신을 싸되 먼저 발을 가린 다음 머리를 가리고 또 왼쪽을 가린 뒤에 오른쪽을 가린다. 장포와 횡포순으로 맨 다음 시신을 들어서 관속에 넣는다. 생시에 빠진 이나 먼저 깎은 손·발톱을 담은 주머니를 관 귀퉁이에 넣는다. 이것이 끝나면 병풍이나 포장으로 관을 가린 뒤 관 동쪽에 영상을 마련하고 제물을 올린다. 영상 위에 고인이 사용하던 침구·의복·지팡이·신·수건·붓·벼루 등을 올려놓는다. 대렴이 끝나면 대곡(代哭)을 그친다.

성복은 상복을 입는 절차로 대렴이 끝난 이튿날,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 하는 의식이다. 날이 밝으면 오복(五服)의 사람들이 각각 복을 입고 차례대로 조곡(朝哭)을 하고 서로 조상(弔喪)한다. 오복이란 상복을 참최·재최·대공·소공·시마로 구분한 것을 통칭한 것이다. 참최(斬衰)는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가 안 계실 때 조부나 증조, 고조를 위해서 승중(承重)하는 자, 아버지가 적자(嫡子)를 위해 3년 동안 입는 복이다. 반면에 승중은 했어도 폐질(廢疾)이 있어 종묘(宗廟)의 일을 맡아 다스리거나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자가 그 뒤를 이었을 때, 서손(庶孫)이 그 뒤를 계승할 때, 서자(庶子)를 세워 대를 잇게 했을 때는 참최를 입지 못한다. 재최(齋衰)는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3년 동안 입는 복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경우와 출가한 딸이 어머니를 위해서는 3년을 입지 못한다. 대공(大功)은 종형제(從兄弟)와 종자매(從姉妹)를 위해 9개월 동안 입는 복이다. 이미 시집간 손녀와 적자가 있을 때 장손(長孫)을 위해서도 같다. 소공(小功)은 종조부모(從祖父母), 형제의 손자, 종형제의 아들, 재종형제를 위해서 5개월 동안 입는 복이다. 외조부모(外祖父母)와 외숙(外叔), 생질(甥姪)에게도 같다. 시마(緦麻)는 종증조부모(從曾祖父母), 증조(曾祖)의 형제나 자매, 형제의 증손(曾孫)과 증조부모를 위해 3개월 동안 입는 복이다.

치장은 택지(擇地)에서 성분(成墳)까지의 절차를 말한다. 택지는 상주 이외의 자식 중 한 사람이 내정된 곳에 가서 시신을 평안히 모실 수 있는 곳인가를 살피는 것이다. 묏자리를 볼 때는 옛날부터 길이 날 곳이 아닌가, 건물이 설 자리가 아닌가, 묘가 파일 염려는 없는가, 세력 있는 자에게 빼앗길 자리가 아닌가, 농토로 변할 자리가 아닌가 등의 다섯 가지 사항을 주의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항을 잘 검토하여 묘지가 결정되면, 장사 지낼 날짜를 정하여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알리고 조전 때 영연(靈筵)에 고한다. 장지에 공사를 시작하면 사토제(祠土祭)를 지낸다. 이날 상주가 조곡을 마치면 사토제를 지낼 사람을 선정하여 집사와 같이 묫자리에 가서 네 귀퉁이에 각각 표목을 세우고 중간에 신위를 남향으로 설치하고 주과포혜를 진설하고 사토제를 지낸다. 이때 상주는 참석하지 않는다. 무덤 구덩이인 광중(壙中)을 팔 때는 나무 네 개를 가지고 정(井)자 모양으로 만든 다음, 관의 척수를 헤아려 반듯하게 놓아 그 모양대로 땅을 판다. 광중을 다 파고 나면 석회에 모래를 섞어 관에 들어갈 만큼 발라 곽(槨)과 같이 만든다.

부부를 같이 합장할 때는 남자는 서쪽, 여자는 동쪽으로 한다. 선영에 묘를 쓸 때는 먼저 선영의 묘에 제사를 지낸다. 천구는 영구(靈柩)를 상여로 옮기는 의식으로 발인(發靷) 전날 행한다. 이때 상복을 입은 친척들이 모두 와서 참례하고 조전을 올린다. 축관이 혼백을 받들고 앞서 가서 사당 앞에 뵈면 집사는 제물을 진설한다. 다음에 명정이 따르고 복인(服人)들이 영구를 들어 모시면 상주 이하는 모두 곡하면서 그 뒤를 따른다. 사당 앞에 도착하면 북쪽으로 향해 혼백을 자리 위에 모신다.

영구를 다시 마루로 옮길 때는 축관이 혼백을 받들고 영구를 안내하면 주인 이하 모두가 곡하면서 뒤따른다. 마루에 도착하면 영구를 자리 위에 놓고 축관은 영구 앞에 제상을 마련한다. 이것이 끝나면 모두 제자리에 앉아 곡을 한다. 해가 지면 조전을 올리고 이튿날 날이 밝으면 영구를 상여로 옮긴다. 발인이란 영구가 장지를 향해 떠나는 것을 말한다. 축관이 술을 따라 올리고 무릎을 꿇고 축문을 읽고 나면 상주 이하는 모두 곡하고 절한다.

영구가 떠나면 방상(方相)1)이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한다. 명정, 공포, 만장, 요여(腰輿), 요여 배행, 영구, 영구 시종, 상주, 복인, 조객의 순서로 출발한다. 요여 배행은 복인이 아닌 친척이 하는 것이 예이며, 영구의 시종은 조카나 사위가 하는 것이 예이다. 만장(輓章)은 고인을 애도하여 지은 글로서 비단이나 종이에 싸서 기를 만들어 상여를 따르도록 한다. 만장의 첫머리에는 ‘근조(謹弔)’라 쓰고, 만장의 본문을 쓴 다음, 맨 끝에 쓴 사람의 성명을 쓰되 ‘○○(본관) 후인 ○○○(성명) 곡(哭) 재배(再拜)’라 쓴다. 운구란 영구를 운반하여 장지까지 가는 것을 말한다. 운구하는 도중에는 상주 이하 모두가 곡을 하면서 따른다. 상여로 운구할 때 묘소로 가는 도중에 노제(路祭)를 지내기도 한다. 이는 고인과 친한 조객이나 친척 중에서 뜻있는 사람이 스스로 음식을 준비했다가 지낸다.

만일 묘소가 멀 때는 매 30리마다 영구 앞에 영좌를 만들고 조석으로 곡하며 제사를 올리고 식사 때가 되면 상식을 올리고 밤이면 상주 형제는 모두 영구 곁에서 잔다. 하관할 때 상주들은 곡을 그치고 하관하는 것을 살펴본다. 혹 다른 물건이 광중으로 떨어지거나 영구가 비뚤어지지 않는가를 살핀다. 하관이 끝나면 풀솜으로 관을 깨끗이 닦고 나서 구의(柩衣)와 명정을 정돈해서 관 한복판에 덮는다. 집사자가 현훈(玄纁)2)를 가져다가 상주에게 주면 상주는 이것을 받아서 축관에게 주고 축관은 이것을 받들고 광중에 들어가 관의 동쪽, 즉 죽은 사람의 왼편에 바친다. 이때 상주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나면 모든 사람들이 슬피 곡한다.

광중에 흙을 채우고 봉토를 만드는 것을 성분이라 한다. 축관으로 하여금 산신제를 지내도록 하고, 산신제가 끝나면 나무로 깎아 만든 신주에 글씨를 쓴다. 신주는 벼슬이 1품에 이른 사람은 주목(朱木), 3품 이상은 비자나무, 그 이하는 밤나무로 만든다. 신주에는 아버지인 경우 ‘현고학생부군 신주(顯考學生府君 神主)’, 어머니인 경우 ‘현비유인 ○○○씨 신주(顯孺人 ○○○氏 神主)’, 아내는 ‘망실(亡室)’, 서자의 어머니는 ‘망모(亡母)’라고 쓴다. 신주가 완성되면 평토제(平土祭)를 지낸다. 지석(誌石) 두 개를 준비하여 윗돌에는 ‘모관모공지묘(某官某公之墓)’라 새기고, 아랫돌에는 성명과 자·출생일·사망일·출생지·가족관계·관직 약력 등을 적어 묘 근처에 포개어 묻는다.

반곡은 장례가 끝난 뒤 상주 이하가 요여3)를 모시고 귀가하면서 곡하는 것을 말한다. 집사는 영좌를 미리 만들어놓았다가 상주가 집에 도착하면 축관으로 하여금 신주를 모시게 하고 신주 뒤에 혼백함을 모신다. 그러면 상주 이하가 그 앞에 나가 곡을 한다. 장지에서 혼백을 다시 집으로 모셔오는 것을 반혼(反魂)이라 한다.

초우제는 장례를 모신 당일에 지내며, 묘지가 멀어서 당일에 집에 도착하지 못하면 도중 숙소에서 지낸다. 초우제를 지내려면 목욕을 깨끗이 해야 하고, 상황이 안 되면 세수라도 정결히 한다. 집사가 제상에 제수를 진설하고 축관이 신주를 영좌에 모시면, 촛불을 켜고 남자들은 동쪽에서 서쪽을 보고, 여자들은 서쪽에서 동쪽을 보고 상장을 짚고 서열대로 서서 곡을 한다. 초우제는 강신(降神)-초헌(初獻)-아헌(亞獻)-종헌(終獻)-첨작(添酌)-합문(閤門)-계문사신(啓門辭神)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재우제는 초우를 지낸 뒤 십간(十干) 중에 을(乙)·정(丁)·기(己)·신(辛)·계(癸)가 든 날인 유일(柔日)에 지내고, 재우제를 지낸 후 돌아오는 갑(甲)·병(丙)·무(戊)·경(庚)·임(壬)이 든 첫 강일(剛日)에 삼우제를 지낸다.

졸곡은 삼우가 끝난 후 3개월이 지나서 강일을 당하면 지낸다. 제사 지내는 절차는 삼우제 때와 다를 것이 없고, 다만 이로부터는 비록 슬픈 마음이 들어도 무시로 곡하지 않고 조석곡(朝夕哭)만 한다. 졸곡이 지난 후부터는 밥을 먹고 물도 마시며 잠 잘 때는 목침을 벤다. 부제는 졸곡을 지낸 다음 날 새 신주를 조상의 신주 곁에 모실 때 지낸다.

소상은 돌아가신 지 만 1년이 되는 날 지내는 제사로서 윤달에 상관없이 13개월 만에 지낸다. 제사 하루 전에 상주 이하 모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이때 모든 복인들은 연복(練服 : 빨아서 다듬은 옷)으로 갈아입고, 기년복을 입었던 사람은 평상복인 길복(吉服)으로 갈아입는다. 그러나 소상 달이 가기 전에는 비단이나 유색 옷은 입지 않는다. 소상이 지난 후에는 아직 복을 벗지 않은 사람에 한해서 삭망(朔望)에만 제사 지내며 곡을 한다.

대상은 돌아가신 지 만 2년이 지난 기일에 올리는 제사이다. 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 어머니를 위한 상은 만 1년이 되는 기일이 대상이 된다. 대상이 지나면 3년상을 벗는데, 상복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상장과 요대는 태운다. 이날부터 포·젓갈은 먹으나 다른 고기나 술은 먹지 않는다. 담제는 초상으로부터 27개월 만에, 즉 대상으로부터 두 달째에 지내는 제사로서 복을 다 벗는 제사이다. 그래서 담제를 탈상(脫喪)이라 한다. 담제의 일자는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 가운데 택일한다. 그러나 초상이 겹쳤을 때는 먼저 초상의 담제는 지내지 않으며, 아버지가 생존한 모상이나 처상의 담제는 15개월 만에 지낸다. 담제를 지낼 때는 한달 전 하순경에 미리 날을 정하여 사당에 고한다.

담제가 끝난 후 다음달의 정일이나 해일에 사당의 신주를 고쳐쓰기 위해 지내는 제사이다. 신주는 제사를 주관하는 주제자를 중심으로 하여 대(代)를 쓰는 것이므로 대가 바뀌면 고쳐 써야 하고, 오대조 고비(考妣)는 사당에 모실 수 없어 그 신주를 묘소 옆에 묻는데, 이를 매안(埋安)이라 한다. 이에 따라 오대조 고비는 기제에서 묘제로 옮겨지게 된다. 개장은 묘를 옮겨 다시 장사 지내는 것을 말하며, 이장(移葬)이라고도 한다. 의식은 초상 때와 같고, 이장하려면 먼저 새 묘소를 정하여 날을 받은 다음 옛 묘지에 가서 토지신에게 고하고 사당에도 하루 전에 고한다. 장사 후 3년 내에 개장할 때는 초상 때의 상복을 그대로 입고, 3년이 지난 후면 시마복(緦麻服)을 새로 지어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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