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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여주·이천평야를 기반으로 삶을 영위하여온 여주의 주민들은 전체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영농방식이 근대화되기 이전까지는 농업은 기본적으로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었다. 생활 속에서 농경의 이같은 특수성을 절감한 주민들은 공동의 노동조직인 두레를 조직·운영하였다.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모내기철이나 김매기철이 되면 농기를 앞세운 두레패들이 호미를 뒷춤에 꽂고 풍악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논으로 나가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있었다. 두레는 공동작업을 통해 노동력의 문제를 해결해나갔던 우리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었다. 마을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두레는 노동을 함께 할 뿐 아니라 식사와 휴식을 함께 하며, 놀이까지도 함께 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영농방식이 기계화되면서 두레패도 함께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논에 나란히 늘어서서 모를 심고 김을 매던 방식이 사라지고 경운기와 트랙터를 이용한 모심기와 비행기를 이용한 시비(施肥) 등 영농방식의 기계화는 전통적인 민속에도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두레나 품앗이의 정신만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주민들이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미풍양속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요즈음에도 모내기철이 되면 들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해 들로 새참을 내가는 아낙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한데 어울려 새참을 먹고 막걸리잔을 들이키면서 피로를 푸는 농군들의 모습을 쉽사리 목격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도 두레와 품앗이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을을 단위로 한 두레의 조직과 운영은 ‘단허리’와 같은 농요(農謠)의 전승을 가능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농기싸움(두레싸움)’이나 ‘호미씻이’ 같은 민속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두레패는 또한 마을의 농악대가 되어 줄다리기나 지신밟기, 거북놀이 등을 할 때면 주민들의 흥을 돋우고 마을 전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일을 맡기도 하였으며, 마을에 상사(喪事)가 나면 상두꾼이 되어 운구를 돕기도 하였다. 이처럼 두레는 단순히 공동노동만을 목적으로 한 조직이라기보다는 일상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마을주민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상부상조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한 자율적 조직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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