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HOME 주제 문화유산 분묘유적 한~홍 홍진 묘

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홍진 묘

□ 소재지 : 대신면 계신리
□ 시 대 : 조선

홍진(1541~1616)은 광해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 자는 희고(希古), 호는 인재(認齋), 또는 퇴촌(退村)이다. 고려 삼중대광 태사인 홍은열의 후손이자 장양공(莊襄公) 홍사석(洪師錫, ?~1448)의 6세손으로 치재 홍인우의 아들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0년(선조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자(正字)로 등용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호군으로 어가(御駕)를 호종하고, 좌승지에 올라 선조의 측근에서 시종하였다. 이듬해 환도(還都)하고 염철사(鹽鐵使)가 되어 경기·황해·충청·전라도 해변의 소금을 전국 각지에 보내 기민(饑民)을 구제할 것을 진언하였다. 1595년(선조 28) 대사헌이 되어 약방제조(藥房提調)를 겸하였으며, 이후 동지중추부사·이조판서·우참찬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604년(선조 37) 판의금부사가 되고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扈從)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당흥부원군(唐興府院君)에 봉해졌다. 1609년(광해군 1) 관상감제조를 제수 받았으나 북인(北人)이 집권하자 곧 사퇴하였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단민(端敏)이다. 저서로 『퇴촌유고(退村遺稿)』가 전한다.

묘는 계림리 계림동마을의 남양홍씨세장지 내에 위치한다. 묘소 앞으론 멀리 양평의 추읍산(趨邑山, 583m)이 바라다 보인다. 묘역에는 상석(높이 27, 폭 174, 두께 83), 고석(높이 26.5, 폭 36, 두께 36), 향로석(높이 34, 폭 40, 두께 33), 망주석(높이 185, 폭 47, 두께 44), 동자석(높이 99, 폭 36, 두께 35), 문인석(높이 186, 폭 54, 두께 50)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복두공복을 입은 문인석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으며, 동자석은 손에 향꽂이를 쥐고 있다. 망주석의 상단에는 운각(雲角)과 염우(廉隅)가, 주신에는 차일끈을 묶기 위해 쇠고리를 끼우던 구멍이 나 있다. 한편 쌍분(雙墳)의 봉분 앞에 방부원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155)가 세워져 있다. 비신(높이 128, 폭 50, 두께 18)의 앞면에 “충근정량효절협책호성공신(忠勤貞亮効節協策扈聖功臣) 당흥부원군(唐興府院君) 증의정부영의정(贈議政府領議政) 퇴촌(退村) 홍공지묘(洪公之墓)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 파평윤씨(坡平尹氏) 장재(葬在) 박씨(朴氏) 묘좌(墓左) 정경부인(貞敬夫人) 울산박씨(蔚山朴氏) 부(祔)”라 쓰여 있어 피장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뒷면에 9행의 음기를 새겼으나 마모가 심하며 찬서자는 기록하지 않았다. 건립연대는 “만력(萬曆) 사십칠년(四十七年, 1619, 광해군 11) 구월(九月) 일건(日建)”이다.

이외에도 홍진 묘 주변에는 첨지중추부사 홍덕연, 치재 홍인우, 순천군수 홍여율, 공조정랑 홍유형(洪有炯, 1590~1650)의 묘가 산재해 있다.

맨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