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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우 묘

□ 소재지 : 대신면 계림리
□ 시 대 : 조선

홍인우(1515~1554)는 명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 자는 응길(應吉), 호는 치재(耻齋)이다. 고려 삼중대광 태사인 홍은열의 후손이자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홍덕연의 아들이며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과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1537년(중종 32)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 연구에만 전심하였다. 당시의 거유(巨儒)인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 1515~1590)도 공부 중에 의심나는 부분이 있으면 그에게 서신이나 구두로 물었고, 모재 김안국도 학행을 높이 칭찬하였다. 그리고 약 처방을 손수 할 정도로 의술에도 밝았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여주의 기천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치재유고(耻齋遺稿)』, 『관동일록(關東日錄)』이 있다.

묘는 계림리 계림동마을의 남양홍씨세장지 내에 위치한다. 묘의 우측에는 아들 홍진의 묘가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5, 폭 68.5, 두께 27), 상석(높이 23, 폭 151.5, 두께 88), 문인석(높이 60, 폭 51, 두께 42)의 옛 석물만이 단촐하게 마련되어 있다. 복두공복을 착용한 문인석의 옷 주름이 여러 겹으로 표현된 것이 양식상의 특징이다. 봉분 바로 앞에는 방부원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177)가 건립되어 있다. 비신(높이 157, 폭 57, 두께 16)의 앞면에 “증영의정(贈領議政) 당양부원군(唐陽府院君) 치재선생(耻齋先生) 홍공지묘(洪公之墓)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 순천김씨(順天金氏) 부(祔)”라 쓰여 있어 부부가 합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홍문관부제학 한준겸(韓浚謙, 1557~1627)이 지어 뒷면에 새긴 음기는 마모 극심하지만, 그의 문집인 『유천유고(柳川遺稿)』에 “성균생원(成均生員) 증순충적덕보조공신(贈純忠積德補祚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 겸영경연(兼領經筵) 관상감사(觀象監事) 당양부원군(唐陽府院君) 홍공인우(洪公仁祐) 묘표음기(墓表陰記)”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어 홍인우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다. 글씨는 당대의 명필인 석봉 한호가 흡곡현령(歙谷縣令)에 재직할 때 썼다. 한호가 흡곡현령에 임명된 시기가 61세 때인 1604년(선조 36)이니, 홍인우 묘표는 그가 말년에 쓴 매우 귀중한 금석문이다. 건립연대는 마멸되어 확인이 어려우나 1604년경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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