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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 묘

□ 소재지 : 흥천면 문장리 산82
□ 시 대 : 조선
□ 지정사항 : 향토유적 제7호

홍영식(1855~1884)은 고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 자는 중육(仲育), 호는 금석(琴石)이며, 영의정 홍순목의 아들이다. 박규수(朴珪壽, 1807~1876) 문하에서 김옥균(金玉均, 1851~1894), 박영효(朴泳孝, 1861~1939), 서광범(徐光範, 1859~?) 등과 함께 개화사상을 배웠고, 한때 유대치(劉大致)의 지도도 받았다. 1873년(고종 10) 식년문과에 급제 후 규장각의 정자(正字)와 직각(直閣) 등을 역임하였으며,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과 보빙사(報聘使)의 일행으로 일본과 미국을 시찰한 후 개화당(開化黨)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884년 우정국총판(郵政局總辦)을 겸임하여 우정국 설립에 전력하였고, 10월 17일의 우정국의 개국연을 계기로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처음 신정부의 좌우영사겸우포장(左右營使兼右捕將)에 제수되었다가, 곧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청(淸)의 개입으로 정변이 실패하고 박영교(朴泳敎, 1849~1884)와 함께 고종을 호위하다가 청군에게 살해당했다. 아버지 홍순목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진하였다. 그는 명문 출신에 성품도 온후하여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전한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원되었으며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묘는 문장리 문바실마을의 뒤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근래에 묘역을 새로 개수하면서 혼유석, 상석, 고석, 향로석을 다시 설치하였다. 봉분의 우측에는 1977년에 세운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가 건립되어 있다. 오석의 비신 앞면에 “금석선생(琴石先生) 남양(南陽) 홍공영식지묘(洪公英植之墓)”라고 써서 피장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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