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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민 묘

□ 소재지 : 금사면 이포리
□ 시 대 : 조선

홍성민(1536~1594)은 선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 자는 시가(時可), 호는 졸옹(拙翁)이며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홍춘경의 아들이다. 1564년(명종 1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자·교리 등을 지내고 1567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다녀와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575년(선조 8) 호조참판에 이르러 사은사(謝恩使)로 명(明)에 건너가 종계변무(宗系辨誣)에 힘써 만족할 만한 성과들 거두고 귀국했다. 그후 예조판서·대사헌 등을 역임하였으며, 1590년(선조 23)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익성군(益城君)에 봉하여졌다. 이듬해 판중추부사가 되었다가 건저(建儲) 문제로 정철(鄭澈, 1536~1593)이 실각하자, 그 일당으로 몰려 북변인 부령(富寧)으로 유배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특사로 풀려나 복관되어 대제학을 거쳐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저서로 『졸옹집(拙翁集)』이 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묘는 이포리 뒷골마을의 북쪽 구릉에 조성된 남양홍씨세장지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18, 폭 131.5, 두께 21), 상석(높이 39, 폭 129, 두께 86), 향로석(높이 42, 폭 31, 두께 27), 망주석(높이 166, 폭 30, 두께 30)의 옛 석물이 간소하게 설치되어 있는데, 상석을 대리석으로 만든 것이 이색적이다. 봉분의 우측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209)가 건립되어 있다. 음기가 있으나 찬서자는 미상이고 “숭정기원지무인(崇禎紀元之戊寅, 1638, 인조 16) 팔월(八月) 일립(日立)”에 세운 것이다. 신도비는 마을 입구의 도로변에 홍명구 신도비와 함께 나란히 서 있다. 양식이나 규모가 거의 동일하여 마치 쌍둥이 비석을 보는 듯하다.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 이정영(李正英, 1616~1867)이 올린 전액은 “증영의정(贈領議政) 시문정(諡文貞) 홍공(洪公) 신도비명(神道碑銘)”이라 되어 있어 비석의 종류가 신도비(총 높이 346)임을 파악할 수 있다. 영의정 신흠(申欽, 1566~1628)이 지은 비문을 현손(玄孫)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홍득우(洪得禹, 1641~1700)가 비신(높이 228, 폭 97, 두께 35)의 사면에 정성들여 썼다. 추기(追記)는 손자인 이조판서 홍명하가 근기(謹記)하였으나 서자(書者)는 미상이다. 비신의 앞면 하단에 총탄 자국이 있으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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