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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흥일 묘

□ 소재지 : 강천면 부평리
□ 시 대 : 조선

한흥일(1587~1651)은 효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 자는 진보(振甫), 호는 유시(柳示)이다. 문간공 한상경의 후손으로 호조참의 한백겸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고, 1628년에 수찬을 거쳐 총융사(摠戎使)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었다. 1636년(인조 14) 사간을 거쳐 동부승지가 되었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신주(神主)와 빈궁(嬪宮)들을 강화도로 호위하였고 좌부승지(左副承旨)와 전주부윤(全州府尹)을 역임하였다. 1637년 봉림대군(鳳林大君, 뒤의 효종)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갈 때 배종(陪從)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우승지를 거쳐, 1643년(인조 21)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 이후 이조참판·대사간·예조판서를 거쳐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로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651년(효종 2) 우의정에 올랐다. 인조 때 척화파(斥和派)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였으며 시호는 정온(靖溫)이다.

묘는 부평리 낡은절골(寺洞)의 구릉 중턱에 동향(東向)으로 조성되어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10, 폭 90, 두께 38), 상석(높이 34, 폭 150, 두께 101), 상석 받침(높이 38, 폭 150, 두께 54), 향로석(높이 63, 폭 43, 두께 32.5), 망주석(높이 183, 폭 39, 두께 39), 문인석(높이 182, 폭 63, 두께 53)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금관조복을 입은 문인석의 장식이 화려하나 얼굴의 표현이 섬세하지 못하고, 귀와 어깨가 너무 맞닿아 있어 신체비례가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팔각 망주석은 대석(臺石)에 운족(雲足)과 복련(覆蓮)을 새기고 상단(上段)에는 연주(連珠)와 운각(雲角)을 아름답게 조각하였다. 봉분 앞에 방부원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180.5)가 건립되어 있다. 비신(높이 140.5, 폭 63.5, 두께 20)의 앞면에 대해(大楷)로 “의정부우의정(議政府右議政) 한흥일지묘(韓興一之墓)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 동복오씨(同福吳氏) 부좌(祔左)”라고 하여 부부 합장묘임을 알 수 있다. 비신의 뒷면에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완산이씨(完山李氏) 묘재용미후(墓在龍尾後) 유좌묘향지원(酉坐卯向之原)”이라 하고 “순치(順治) 구년(九年) 임진(壬辰, 1652, 효종 3) 이월(二月) 십구일(十九日) 입(立)”라는 건립연대만을 썼을 뿐 음기는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한흥일 묘 위에는 두 번째 부인인 완산 이씨(完山,李氏, 1619~1688)의 묘가 있고, 바로 아래에는 아들인 건원릉참봉 한기명의 묘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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