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HOME 주제 문화유산 분묘유적 한~홍 한백겸 묘

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한백겸 묘

□ 소재지 : 강천면 부평리 481-1
□ 시 대 : 조선
□ 지정사항 : 경기도 기념물 제165호

한백겸(1552~1615)은 광해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 자는 명길(鳴吉), 호는 구암(久菴)이다. 문간공(文簡公) 한상경(韓尙敬, 1360~1423)의 후손으로 경성도호부판관을 지낸 한효윤의 아들이며 인조(仁祖)의 국구(國舅)인 서평부원군(西平府院君) 한준겸(韓浚謙, 1557~1627)의 백형(伯兄)이다. 18세에 행촌(杏村) 민순(閔純, 1519~1591)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닦았으며 1579년(선조 12) 생원시에 합격하고, 1585년 교정청(校正廳)이 신설되자 한강(寒岡) 정구(鄭球, 1543~1620) 등과 함께 교정낭청(校正郎廳)에 임명되었다. 호조좌랑을 시작으로 형조좌랑과 청주목사를 지냈으며 1607년(선조 40) 장예원판결사를 거쳐 호조참의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선조가 죽자 빈전도감당상(殯殿都監堂上)이 되어 상례(喪禮)를 주관하였다. 그러나 곧 관직을 사임하고 양주의 물이촌(勿移村)에 퇴거해 있다가 역학(易學)에 해박하다 하여 선조 때부터 편찬하던 『주역전의(周易傳義)』의 교정을 보았다. 실증적이며 고증학적인 방법으로 역사·지리를 연구하고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를 지어 실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저서로 『구암유고(久菴遺稿)』가 전하며 원주(原州)의 칠봉서원(七峰書院)에 제향되었다.

부평리 가마섬(부도) 마을의 입구에 총 높이 약573㎝를 자랑하는 귀부이수 양식의 거대한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귀두(龜頭)가 우측으로 돌아 간 귀부(높이 96, 폭 200, 두께 229)의 등에는 귀갑문(龜甲紋)을 짜임새 있게 잘 배치하고, 이수(높이 약 200)의 앞뒤에는 쌍룡쟁주(雙龍爭珠)를, 좌우에는 단룡농주(單龍弄珠)를 조각하였다. 또한 이수 위에 별도의 석재로 하엽보주(荷葉寶珠)를 올려놓았는데, 그 하부에 구름 속에서 노니는 용을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전반적으로 고려시대의 이수 제작기법이 가미되어 있어 이웃한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高達寺 元宗大師慧眞塔碑, 975, 보물 제6호),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비(居頓寺 圓空國師勝妙塔碑, 1018, 보물 제78호),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 1085, 국보 제59호)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듯하다.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 김광욱(金光煜, 1580~1656)이 쓴 전액이 “증가선대부(贈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구암선생(久菴先生) 한공(韓公) 신도비명(神道碑銘)”이라 되어 있어 한백겸 신도비임을 파악할 수 있다. 이조판서 정경세(鄭經世, 1563~1633)가 지은 비문을 당대의 명필인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오준(吳竣, 1587~1666)이 써서 비신(높이 277, 폭 122, 두께 33)의 앞면에만 각자하였다. 비문의 말미에 새겨진 건립연대는 “숭정(崇禎) 십칠년(十七年, 1644, 인조 21) 이월(二月) 일립(日立)”이며 상태는 양호하다.

신도비 뒤로 난 산길을 따라 오르면 청주한씨세장지가 나타난다. 한백겸 묘는 세장지의 가장 위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앞으로 섬강(蟾江)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5, 폭 95.5, 두께 49), 상석(높이 30.5, 폭 178.5, 두께 102.5), 망주석(높이 163, 폭 36, 두께 34), 문인석(높이 204, 폭 67, 두께 45)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복두공복을 입은 문인석의 입과 손을 비교적 작게 표현한 것과 망주석 상단부의 원수(圓首)를 높게 세운 것이 양식상의 특징이다. 봉분 앞에 방부원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219)가 입석되어 있다. 비신(높이 175, 폭 66.5, 두께 20)의 앞면에 피장자의 신원만 썼을 뿐 나머지 삼면에는 아무런 기록도 하지 않았다. 전후사정으로 보아 한백겸이 돌아간 1615년(광해군 7)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경기도기념물 제165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이외에도 세장지에는 문천군수(文川郡守) 한여필(韓汝弼, ?~1571),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한중겸(韓重謙, 1555~1579),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 한후상(韓後相, 1637~1711), 우의정(右議政) 한흥일(韓興一)의 세 번째 부인인 전주 이씨(全州 李氏, ?~1637)의 묘가 위치한다.

맨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