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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묘

□ 소재지 : 점동면 원부리
□ 시 대 : 조선

정전(1475~1513)은 중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래, 자는 자원(子遠)이다. 정절공(靖節公) 정구(鄭矩, 1350~1418)의 현손이자 부사직 정형운의 양자이다. 1498년(연산군 4) 사마시에 합격하고 1509년(중종 4) 문과급제하여 처음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에 제수되고 이어 예문관대교(藝文館待敎)를 지냈으며 서장관(書狀官)으로 명(明)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묘는 원부리 동래정씨세장지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은 1986년 성남시(城南市)에서 이장하면서 원형이 크게 변형되었으며 석물도 모두 신설하였다. 봉분의 좌측에 방부원수 양식의 신도비(높이 172)가 건립되어 있다. 대리석 비신(높이 148, 폭 51, 두께 17.5)의 앞면에 피장자의 신원을 밝히고 뒷면에 신도비문을 각자하였다. 우의정 홍섬(洪暹, 1504~1585)이 지은 비문을 여성군(礪城君) 송인(宋寅, 1516~1584)이 유려한 솜씨로 썼다. 비제는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증자헌대부(贈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 겸지경연(兼知經筵) 춘추관사(春秋館事)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행통사랑(行通仕郞) 예문관대교(藝文館待敎) 겸춘추관기사관(兼春秋館記事官) 정공(鄭公) 신도비명병서(神道碑銘幷序)”이나, 전액은 올리지 않았다. 비문의 상태는 양호하며 건립연대는 “융경(隆慶) 사년(四年) 경오(庚午, 1570, 선조 3) 시월(十月) 일(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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