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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응린 묘

□ 소재지 : 흥천면 상백리
□ 시 대 : 조선

정응린(1531~1592)은 선조대의 무신으로 본관은 하동, 자는 백인(伯仁)이다. 사복시정 정경복의 손자이자 군자감정 정여호의 아들이다. 1573년(선조 6) 무과급제 후 함평현감을 지내고 1590년(선조 23) 광국공신(光國功臣) 원종록(原從錄)에 올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누차 전공을 세웠으나, 지평(砥平)의 고라산(古羅山)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큰며느리 청풍 김씨(淸風 金氏), 셋째 아들 정괄(鄭适), 넷째 아들 정일(鄭逸)과 함께 순절(殉節)하였다. 사후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정려문이 하사되었다.

묘는 상백리 건너말의 뒷산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상석(높이 25, 폭 151, 두께 25), 향로석(높이 24, 폭 32, 두께 29), 망주석(높이 210, 폭 53, 두께 51), 문인석(높이 200, 폭 62, 두께 36) 등 옛 석물이 구비되어 있다. 문인석은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입고 있으며, 홀과 턱 사이를 띄워 놓았다. 그리고 망주석은 팔각 대석을 마련하고 상단에는 운각(雲角)과 연주(連珠)를 조각하였다. 모든 석물이 이끼가 많이 껴있고 박락이 많이 진행된 상태이다. 봉분의 좌측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갈이 건립되어 있다. 대리석 비신의 앞면에 아름다운 예서로 “유명조선(有明朝鮮) 광국공신(光國功臣) 통훈대부(通訓大夫) 행함평현감(行咸平縣監) 증가선대부(贈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 정공응린지묘(鄭公應麟之墓) 증정부인(贈貞夫人) 경주김씨(慶州金氏) 부좌(祔左)”라고 써서 부부 합장임을 알 수 있다. 뒷면에 음기를 새겼으나 찬서자는 기록하지 않았다.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재회(再回) 정묘(丁卯, 1687, 숙종 13) 입(立)”이다.

정응린 묘의 바로 위에는 아버지 정여호의 묘가 있고, 아래에는 외가 집안인 진용부위(進勇副尉) 장자인(張自仁)의 묘가 위치한다. 그리고 좌측에는 청풍 김씨 효열비(孝烈碑)가 서 있고, 우측 능선에는 친가 쪽의 통덕랑(通德郞) 정공필(鄭公弼), 통덕랑 정상징(鄭相徵)의 묘와 외가(外家)쪽의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 장덕의(張德儀), 해남현감(海南縣監) 장귀손(張貴孫)의 묘가 서로 뒤섞여 조성되어 있다. 정여호가 단양 장씨의 사위가 되면서 처가 쪽 선산을 대대로 함께 사용한 듯한데, 이 같은 경우는 매우 희귀하여 조선시대 묘제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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