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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년 묘

□ 소재지 : 점동면 원부리 산2
□ 시 대 : 조선
□ 지정사항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8호

정대년(1503~1578)은 선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로(景老), 호는 사암(思菴)이다. 정절공(靖節公) 정구(鄭矩, 1350~1418)의 5세손이자 예문관대교(藝文館待敎)를 지낸 정전(鄭荃, 1475~1513)의 아들이다. 1531년(중종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2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 후 관직에 나아가 예빈시주부를 거쳐 지평과 직제학을 지냈다. 1542년 감찰로서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明)에 다녀왔다. 그 이듬해 부제학이 되고 황해도관찰사와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선조 때 호조판서를 지내고 좌찬성이 되었다가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권신 윤원형(尹元衡, ?~1565)이 첩을 정실부인으로 삼은 데 대한 사실 여부를 밝히라는 왕명을 받들고 강직하게 처리하였다. 청백리로서 명망이 높았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묘는 원부리 오미마을에 위치한 동래정씨세장지 내에 자리 잡고 있다. 초장지는 성남시에 있었으나 1986년 지금의 장소로 이장한 것이다. 묘역에는 상석(높이 29, 폭 164, 두께 95), 상석 받침석(높이 23, 폭 164, 두께 40), 향로석(높이 34, 폭 37, 두께 34), 망주석(높이 205, 폭 62, 두께 62), 문인석(높이 168, 폭 58, 두께 44)의 옛 석물을 갖추었고, 동자석, 석양, 장명등은 최근에 신설하였다.

망주석은 상단에 운각(雲角)과 염우(廉隅)를 조각하고, 하단엔 팔각 대석(臺石)을 마련하였다. 복두공복을 입은 단정한 모습의 문인석은 의습선(衣褶線)이 부드럽게 처리되었다. 봉분의 우측에 방부원수 양식의 묘갈(총 높이 175)이 건립되어 있는데, 백대리석 비신(높이 146, 폭 66, 두께 17)의 앞면에 피장자의 신원을 쓰고 뒷면에 묘갈문을 각자하였다. 비신의 상단에 “좌찬성(左贊成) 정공(鄭公) 묘갈명(墓碣銘)”이라고 전액을 올려 비석의 종류가 묘갈임을 파악할 수 있다. 비문의 마모가 극심하여 찬자(撰者)는 알 수 없으나 서자(書者)는 선조대의 명필인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 1542~1621)임을 확인할 수 있다. 건립연대는 “만력(萬曆) 무인(戊寅, 1578, 선조 11) 시월(十月) 팔일(八日)”이다.

묘역 아래에 있는 혁림사(赫臨祠) 경내의 비각에는 방부이수 양식의 신도비(총 높이 약 307)가 안치되어 있다. 이수(높이 69, 폭 98, 두께 44)의 앞면에는 쌍룡쟁주(雙龍爭珠)를 조각하고, 방부(높이 54, 폭 132.5, 두께 78)에는 복련(覆蓮)과 당초문(唐草紋)을 장식하였다. 영의정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이 지은 비문을 비신(높이 184, 폭 77.5, 두께 22.5)의 앞면에 병조참판 오준(吳竣, 1587~1666)이 쓰고 홍문관부제학 김광현(金光炫, 1584~1647)이 전액을 올렸다. 비제(碑題)는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겸지경연사(兼知經筵事)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증시충정(贈諡忠貞) 정공(鄭公) 신도비명병서(神道碑銘幷序)”이고 전액은 “좌찬성(左贊成) 충정(忠貞) 정공(鄭公) 신도비명(神道碑銘)”이다. 비신의 뒷면에는 증손(曾孫)인 충청도관찰사 정양필(鄭良弼, 1593~?)이 추기(追記)를 기록하고 원임(原任) 예조정랑(禮曹正郞) 유시영(柳時英)이 서(書)하였다. 건립연대는 “숭정(崇禎) 십삼년(十三年, 1640, 인조 18) 삼월(三月) 일건(日建)”이다.

이외에도 세장지에는 예문관대교 정전(鄭荃, 1475~1513), 여산군수(礪山郡守) 정휴복(鄭休復, 1529~1604), 증이조판서(贈吏曹判書) 정호(鄭灝, 1551~1609), 형조참판 정양필(鄭良弼, 1593~1661), 종성부사(鍾城府使) 정화제(鄭華齊, 1618~1674), 황주목사(黃州牧使) 정항(鄭沆), 운산군수(雲山郡守) 정침(鄭沈), 부사직(副司直) 정형운(鄭亨耘), 훈련주부(訓練主簿) 정돈복(鄭敦復) 등의 묘소가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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