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HOME 주제 문화유산 분묘유적 어~임 임천손 묘

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임천손 묘

□ 소재지 : 대신면 천남리
□ 시 대 : 조선

임천손(1478~1565)은 명종대의 무신으로 본관은 평택, 자는 기수(期叟)이다. 보문각대제학 임재의 후손으로 평안병마절도사 임득정의 손자이자 예빈시판관 임언의 아들이다. 어려서 양친을 여의고 외가에서 성장하였는데, 기이한 재주와 팔의 힘이 세어서 활을 쏘면 늘 명중하였다고 한다. 1499년(연산군 5) 내금위에 보직(補職)되고 1506년 중종반정 때 왕을 호종(扈從)한 공으로 첨사(僉使)에 임명되었다. 1516년(중종 11) 무과에 장원한 후, 고원군수(高原郡守)와 경흥부사(慶興府使)를 지내고 1527년(중종 22) 경상우도수사(慶尙右道水使)를 제수 받았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88세의 장수를 누렸다.

묘는 천남리 평택임씨세장지 내에 위치한다. 원래 용인시 월래동에 있었으나 근래에 이장하였다. 묘역에는 상석(높이 18, 폭 139, 두께 85), 고석(높이 25, 폭 27, 두께 27), 향로석(높이 44, 폭 27, 두께 27), 촉대석(燭臺石, 높이 22, 폭 26, 두께 26), 동자석(높이 104, 폭 38, 두께 34)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문인석과 망주석은 1999년에 새로 추설하였다. 상석의 좌우에 놓인 팔각형 촉대석이, 다른 묘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석물이라 주목된다. 봉분의 우측에 신도비(총 높이 191)가 건립되어 있다. 회백색 대리석의 비신(높이 129, 폭 56, 두께 15.7) 앞면에 두 줄로 부부가 합장된 묘임을 밝히고, 뒷면에 신도비문을 기록하였다. 이조좌랑(吏曹佐郞) 이이(李珥, 1536~1584)가 지은 비문의 비제(碑題)가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가의대부(嘉義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겸오위도총부부총관(兼五衛都總府副摠管) 임공(林公) 신도비명(神道碑銘)”이라 되어 있어 비석의 종류가 신도비임을 파악할 수 있다. 글씨는 경기도관찰사 이택(李澤, 1651~1719)이 썼으나 마모가 심한 상태이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임공지비(林公之碑)”라 올린 전액(篆額)의 서자(書者)는 미상이다. 건립연대는 “가정(嘉靖) 사십오년(四十五年, 1566, 명종 21) 십이월(十二月) 이십오일(二十五日) 입석(立石)”이다.

임천손 묘 위로는 할아버지 임득정과 아버지 임언의 묘소가 있고, 아래에는 후손인 생원 임윤(林贇)의 묘소가 위치한다.

맨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