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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원 묘

□ 소재지 : 산북면 백자리
□ 시 대 : 조선

이충원(1537~1605)은 선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원보(元甫)·원포(圓圃), 호는 송암(松菴)·여수(驪叟)이고 정종의 제10왕자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현손이며 영선감(永善監) 이간(李簡)의 아들이다. 1566년(명종 21) 별시문과에 장원급제 후 출사하여 홍문관수찬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형조참의에 재직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의주까지 호종(扈從)하였고, 환도(還都) 후 형조참판에 특진되었다. 이후 첨지중추부사·한성부판윤을 역임하였으며,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완양부원군(完陽府院君)에 봉해지고, 공조판서에 제수되었다. 글씨에도 능해 고양시의 계원군(桂原君) 이의(李艤) 신도비와 화성시의 조계상(曺繼商) 신도비를 썼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묘는 백자리 절골마을의 뒤쪽 능선에 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쌍분(雙墳)으로 구성된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3, 폭 77, 두께 35), 상석(높이 24, 폭 138, 두께 85), 향로석(높이 44, 폭 34, 두께 32), 망주석(높이 154, 폭 40, 두께 35), 문인석(높이 137, 폭 44, 두께 38)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망주석을 세운 위치가 계체석 안쪽의 봉분 바로 옆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금관조복을 입은 문인석엔 이끼가 많이 껴있으나 상태는 양호하다. 쌍분의 사이에 방부원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154)가 건립되어 있다. 원수형(圓首形)의 비신(높이 124, 폭 53, 두께 18) 앞면에 “충근정량효절협책호성공신(忠勤貞亮効節協策扈聖功臣)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완양부원군(完陽府院君) 겸판의금부사(兼判義禁府事)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이공지묘(李公之墓)”라 쓰고 비신의 좌측에 “천계(天啓) 이년(二年) 임술(壬戌, 1622, 광해군 14) 구월(九月) 초사일(初四日) 입(立)”이라 연대를 새겼으나 음기는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백대리석의 비신은 검게 산화되고 많이 박락되어 판독이 까다로운 실정이고, 방부에는 복련과 안상을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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