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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량 묘

□ 소재지 : 흥천면 귀백리
□ 시 대 : 조선

이우량은 광해군대의 무신이며 본관은 여주이다. 인용교위 이인억의 후손으로 병조판서 이계손(李繼孫, 1423~1484)의 현손이자 좌랑(佐郞) 이사언(李士彦)의 아들이고 예조판서 이우직(李友直, 1529~1590)의 동생이다. 관직에 나아가 서반직(西班職)의 정6품 돈용교위(敦勇校尉)에 올랐다.

묘는 귀백리 작은골의 동쪽 산자락에 자리 잡은 여주이씨세장지의 좌측 상단에 위치한다. 초장지는 경기도 안산시(安山市)였으나 도시개발로 인해서 최근에 이장한 것이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15, 폭 72, 두께 31), 상석(높이 20, 폭 133, 두께 74), 문인석(높이 196, 폭 56, 두께 42)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으며, 고석과 향로석은 최근에 신설하였다. 혼유석과 상석을 대리석으로 설치한 것이 이색적이다. 묘역의 좌우에는 금관조복을 착용한 문인석이 과묵한 표정을 지으며 시립(侍立)해 있다. 양쪽 귀와 어깨가 서로 맞닿아 있고, 턱과 홀(笏)이 붙은 양식상의 특징이 있다. 머리에는 높은 금관을 쓰고, 조복에는 폐슬(蔽膝)과 후수(後綬)를 달았으나 문양은 전혀 새기지 않았다. 특히 우측 문인석의 뒷면 하단에 큰 글씨로 “천계(天啓) 삼년(三年, 1623, 인조 1) 여강이씨(呂江李氏)”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어 주목된다. 이같은 예는 매우 희귀하여 조선시대 문인석 연구의 편년 설정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봉분의 좌측에는 방부이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193.5)가 건립되어 있다. 백대리석 비신(높이 108.5, 폭 61, 두께 17.5)의 앞면에 단정한 글씨로 “돈용교위(敦勇校尉) 이공우량지묘(李公友諒之墓) 의인(宜人) 덕수이씨(德水李氏) 부(祔)”라 써서 부부 합장묘임을 밝히고, 뒷면에 음기(陰記)를 기록하였다. 족후손(族後孫)인 병조좌랑(兵曹佐郞) 이국휴(李國休)가 지었으나, 서자(書者)와 표제(表題)는 남기지 않았다. 건립연대는 “숭정(崇禎) □ 신후(□ 申後) 재병신(再丙申, 1716, 숙종 42) 십일월(十一月) 일(日)”이며 상태는 양호하다. 이수(높이 48, 폭 73, 두께 24)에는 쌍룡쟁주(雙龍爭珠) 형상을 화려하게 조각하고 방부(높이 37, 폭 97.5, 두께 61)에는 복련(覆蓮)과 화문(花紋)을 장식하였다.

한편 세장지에는 동지중추부사 이광진을 비롯하여 1970년대에 여주읍 우만리(又晩里)에서 이장해 온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 이지철(李志哲),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이상운(李尙雲),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우의(李友誼) 등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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