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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묘

□ 소재지 : 여주시 상거동 산19-1
□ 시 대 : 조선
□ 지정사항 : 경기도 기념물 제16호

이완(1602~1674)은 현종대의 무신으로 본관은 경주, 자는 징지(澄之)이고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며 충무공(忠武公) 이수일(李守一, 1554~1632)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한 뒤 처음 만포첨사(滿浦僉使)로 관직에 나아가 1631년(인조 9) 평안도병마절도사로 승진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도원수 금자점(金自點, 1588~1651)의 별장(別將)으로 출전하여 정방산성(正方山城)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1638년 함경남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효종이 송시열 등과 북벌을 계획하자 1653년(효종 4) 훈련대장(訓練大將)이 되어 신무기의 제조, 성곽의 개수 및 신축 등으로 전쟁에 필요한 여러 대책을 강구하였다. 현종대에는 군비축소를 단행하여 북벌의지가 좌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조·형조의 판서로 중용되었고 훈련대장과 포도대장까지도 겸하였다. 1671년(현종 12) 수어사(守禦使)를 거쳐 1674년 우의정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묘는 상거동 안터말의 북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5, 폭 87, 두께 38), 상석(높이 38.5, 폭 158, 두께 96), 고석(높이 27, 폭 36, 두께 36), 향로석(높이 51, 폭 34, 두께 29), 망주석(높이 164, 폭 39, 두께 39), 제주병석(높이 35, 폭 53, 두께 35), 문인석(높이 189, 폭 65, 두께 55)의 옛 석물이 구비되어 있다. 장명등과 동자석도 설치되어 있었으나 근래에 도난당하였다.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한 문인석의 문양이 화려하고, 망주석의 주신에는 염우(廉隅)를 조각하였다. 상석의 우측에 놓인 제주병석(제사용 술병을 올려놓는 돌)은 흔하지 않은 석물이라 주목된다. 한편 봉분 우측에는 방부이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217)가 건립되어 있다. 이수의 앞뒤에는 쌍룡쟁주(雙龍爭珠)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조각하고, 방부(높이 33, 폭 108, 두께 69)의 윗면에는 복련(覆蓮)을 돌렸다. 비신(높이 133, 폭 64, 두께 26)의 앞면에는 대해(大楷)로 “조선국(朝鮮國) 우의정(右議政) 시정익공(諡貞翼公) 이완지묘(李浣之墓) 정경부인(貞敬夫人) 서산정씨(瑞山鄭氏) 부좌(祔左)”라 되어 있다. 그리고 비신의 나머지 삼면에 은진(恩津)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묘표음기를 짓고 나서 해서와 행서를 섞어 유려하게 써 내려갔는데, 글씨체가 매우 뛰어나 양송체(兩宋體)를 창안하여 조선 서예계를 큰 영향을 끼쳤던 송시열의 대표작으로 삼을 만하다. 정확한 건립연대가 없으나, 17세기 후반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도비는 묘역에서 북쪽으로 약 200m 정도 떨어진 거리의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귀부이수 양식에 총 높이 약 434㎝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수의 문양은 묘표와 거의 동일하여 같은 장인(匠人)의 솜씨로 추정된다. 귀부(높이 124, 폭 223, 두께 369)는 지대석(地臺石, 높이 27, 폭 218, 두께 296) 위에 당당하게 앉아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용두(龍頭)에는 송곳니가 돋아나 있고 턱 밑에는 수염이 나 있으며, 꼬리는 우측으로 꼬여 있다. 거북 등에는 하엽비좌(荷葉碑座)를 두고 비신(높이 231, 폭 107, 두께 29)을 받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구도를 갖추고 있다. 비문은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송시열(宋時烈)이 찬(撰)하고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민정중(閔鼎重, 1628~1692)이 비신의 사면에 서(書)하였다. 영의정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이 비신의 상단에 올린 “의정부우의정(議政府右議政) 증시정익(贈諡貞翼) 이공(李公) 신도비명(神道碑銘)”이라는 전액을 통해 이완의 신도비임을 알 수 있다. 건립연대는 “숭정기원지후(崇禎紀元之後) 육십일년(六十一年) 무진(戊辰, 1688, 숙종 14) 월(月) 일립(日立)”이며 상태는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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