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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중 묘

□ 소재지 : 능서면 용은리
□ 시 대 : 조선

이성중(1706~1760)은 영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호는 질암(質庵)이다. 세종의 제5왕자인 광평대군의 후손이자 감사(監司) 이제(李濟, 1654~1714)의 손자이며 응교(應敎)를 지낸 이현모(李顯謨, 1685~1731)의 아들이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관직에 진출하여 교관(敎官)을 지냈으며 과거급제 후 이조좌랑과 부수찬 등을 거쳐 형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754년(영조 30)에는 호남지방의 이정사(釐正使)로 파견되어 각종 민폐를 조사 보고하였고, 1756년(영조 32)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후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洪鳳漢, 1713~1778)과 교유가 있었으며, 저서로 『질암집』을 남겼다.

묘는 용은리 용거동마을의 북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18, 폭 103, 두께 40), 상석(높이 42.5, 폭 152, 두께 98.5), 향로석(높이 52.5, 폭 34.5, 두께 30), 망주석(높이 198, 폭 41, 두께 41.5), 석양(높이 65, 폭 41, 두께 119)의 옛 석물이 배설되어 있다. 향로석의 팔각 몸체에는 안상(眼象)을 설치하고 그 내부에 보상화문(寶相華紋)을 장식하였으며, 날렵한 다리 밑으로 안정된 족대(足臺)를 갖췄다. 또한 상석의 뒷부분에 직사각형의 돌출부를 마련하여 고석(鼓石) 대신에 상석을 받치고 있다. 그리고 균형 잡힌 몸매의 석양은 사실적으로 조각되었으며, 다리와 다리 사이의 공간에는 꽃이 활짝 핀 난초를 그려 넣었다. 좌측의 석양은 상태가 양호하나 우측 석양은 머리가 훼손된 상태이다. 한편 묘역 좌우의 팔각 망주석은 아무런 문양도 새기지 않아, 기능성만 강조한 양식상의 특징이 있다. 피장자의 신분을 파악할 수 있는 묘표가 없지만, 족보와 후손의 증언에 의해서 이성중 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성중 묘의 좌측에는 아들인 면천군수(沔川郡守) 이의질(李義質, 1734~1781)의 묘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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