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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설 묘

□ 소재지 : 강천면 부평리
□ 시 대 : 조선

이명설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세종의 왕자인 담양군(潭陽君) 이거(李)의 6세손이자 완창부원군(完昌府院君) 이성중(李誠中, 1539~1593)의 손자이고 증사헌부집의(贈司憲府執義) 이유심(李幼深)의 아들이며 헌민공(憲敏公) 윤탁연(尹卓然, 1538~1594)의 외손(外孫)이다. 관직에 진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정3품 통훈대부(通訓大夫)의 품계에 오르고 장례원사의(掌隷院司議)를 역임하였으나 정확한 생몰년은 미상이다.

묘는 부평리 운무실의 마을회관 뒷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상석(높이 25.5, 폭 183.5, 두께 83.5), 향로석(높이 32, 폭 30, 두께 26), 망주석(높이 136, 폭 28.5, 두께 32), 문인석(높이 158, 폭 52, 두께 41)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문인석이 묘역의 안쪽에 서고 망주석이 외곽으로 나오는데 비해 이 묘역은 두 석물의 위치가 반대로 되어 있어 주목된다. 금관조복을 입은 문인석은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이끼가 많이 껴 있는 상태이다. 봉분의 앞에 방부원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178.5)가 세워져 있다. 비신(높이 138.5, 폭 58, 두께 17)의 앞면에 대해(大楷)로 “증통정대부(贈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 겸경연참찬관(兼經筵參贊官) 행통훈대부(行通訓大夫) 장례원사의(掌隷院司議) 이공휘명설지묘(李公諱命說之墓)”라고 써 있어 피장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 비신의 뒷면에는 “숭정후(崇禎後) 재기미(再己未, 1739, 영조 15) 시월(十月) 일(日)”이라는 건립연대만 간략히 기록했을 뿐 음기는 마련하지 않았다. 묘표와 상석 사이에 놓인 혼유석은 거의 매몰되어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이명설 묘의 뒤쪽 능선에는 손자인 동지중추부사 이원령(李元齡, 1639~1719)의 묘소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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