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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령 묘

□ 소재지 : 북내면 내룡리
□ 시 대 : 조선

이규령(1625~1694)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 자는 문서(文瑞)이다.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 충정공(忠貞公) 이현영(李顯英, 1573~1642)의 손자이고 파주목사(坡州牧使) 이휘조(李徽祚, 1603~1681)의 아들이다. 1654년(효종 5) 사마시에 합격하여 형조좌랑과 교하현감을 지내고,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1664년 지평을 거쳐 정언을 역임하였다. 1667년(현종 8) 특지로 외척(外戚)인 장선징(張善徵, 1614~1678)을 병조참판에 발탁시키자 이를 상소하여 반대하였다. 1688년(숙종 14) 대사간에 재직시 박세채(朴世采, 1631~1695)의 파면을 반대한 남구만(南九萬, 1629~1711), 여성제(呂聖齊, 1625~1691) 등이 북변으로 유배되자, 서인(西人)으로서 그 부당함을 주장하여 호조참의로 체직되었다가 뒤에 도승지가 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벼슬을 그만두었다가 1694년(숙종 20) 인현왕후(仁顯王后)가 복위되자 다시 대사헌이 되어 기사환국 때의 폐비론(廢妃論)에 동조한 여러 신하의 관대한 처벌을 주장하였다. 이후 병조참판과 형조판서를 지냈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치사(致仕)하였다. 시호는 정혜(貞惠)이다.

묘는 내룡리 사냥말의 동북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전후분(前後墳)으로 구성된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22, 폭 128, 두께 43), 상석(높이 44, 폭 154, 두께 98), 고석(높이 28, 폭 36, 두께 36), 향로석(높이 44, 폭 40, 두께 31.5), 안쪽 망주석(높이 167.5, 폭 38, 두께 36.5), 바깥쪽 망주석(높이 165, 폭40, 두께 39)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육각 향로석에는 복련(覆蓮)과 운족(雲足)을 조각하였고, 망주석에는 운각(雲角)과 염우(廉隅)를 장식하였다. 일반적으로 주신(柱身)에 매달려 있던 다람쥐가 염의 부분까지 올라 온 것이 주목된다. 묘표는 세우지 않았다.

묘역 아래에 방부개석 양식의 신도비(총 높이 약 336)가 건립되어 있다. 대리석의 비신(높이 238, 폭 110, 두께 45)에 새겨진 비문은 완전 마멸되었으며, 전액은 그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족보에 의하면 비문은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서전자(書篆者)는 미상이다. 전후사정으로 보아 숙종대(1674~1720) 말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팔작지붕의 개석(높이 약 53, 폭 152, 두께 93)과 방부(높이 45, 폭 174, 두께 107)는 모두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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