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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전 묘

□ 소재지 : 점동면 사곡리 371
□ 시 대 : 조선
□ 지정사항 : 향토유적 제16호

이계전(1404~1459)은 세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병보(屛甫), 호는 존양재(存養齋)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손자이자 양경공(良景公) 이종선(李種善, 1368~1438)의 아들이며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의 외손(外孫)이다. 1427년(세종 9)에 친시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학사가 되고, 1436년(세종 18)에 왕명으로 김문(金汶, ?~1448) 등과 『강목통감훈의(綱目通鑑訓義)』를 편찬하였다. 1445년(세종 27) 집현전직제학으로 있을 때 답험손실법(踏驗損失法)의 폐지를 주장하고 1452년(문종 2) 『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참여하여 정인지(鄭麟趾, 1396~1478) 등과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같은 해 호조판서에 이어 병조판서로 자리를 옮겼으며 성삼문(成三問, 1418~1456) 등 집현전 출신의 학자가 중심이 되어 세조 제거 운동을 일으켰으나 이에 참여치 않고 세조를 도와 신숙주(申叔舟, 1417~1475) 등과 함께 좌익공신(佐翼功臣)에 녹훈되었다. 이후 이조판서를 거쳐 판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묘는 사곡리 가래울마을의 뒷산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은 2단 계체석(階砌石)의 구조에 혼유석(높이 3, 폭 66, 두께 34), 상석(높이 34.5, 폭 140.5, 두께 86), 향로석(높이 30, 폭 40, 두께 25), 문인석(높이 207, 폭 65, 두께 50)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으며, 장명등은 최근에 신설하였다. 복두공복을 착용한 문인석은 양쪽 귀와 어깨가 서로 맞닿아 있으며, 옷소매로 손을 감싸고 있다. 봉분 앞에 방부원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161)가 건립되어 있다. 대리석의 비신(높이 130, 폭 58, 두께 21.5) 앞면에 대자(大字)로 “유명조선(有明朝鮮) 수충위사협찬정난좌익공신(輸忠衛社協贊靖難佐翼功臣)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 한성부원군(韓城府院君) 증시(贈諡) 문열(文烈) 이공계전지묘(李公季甸之墓)”라 쓰고 뒷면에 음기를 새겼으나 마모가 심한 상태이다. 음기는 11대손 홍문관교리 이현중(李顯重, 1708~1764)이 술(述)하고 11대손 단양군수 이기중(李箕重, 1697~1761)이 서(書)하였다. 건립연대는 “숭정후(崇禎後) 백이십팔년(百二十八年) 을해(乙亥, 1755, 영조 31) 개립(改立)”이다.

이계전 묘 아래에는 그의 처(妻)인 대□ 군부인(大□ 郡夫人) 진씨(秦氏)와 7세손 전라우도병마수군절도사(全羅右道兵馬水軍節度使) 이찬(李)의 묘가 위치한다. 그리고 1999년에 조성한 이계전 신도비가 있으며, 묘역 입구에는 2층 양옥 건물로 지어진 숭모재(崇慕齋)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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