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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운 묘

□ 소재지 : 점동면 사곡리
□ 시 대 : 조선

윤창운(1601~1637)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해평, 자는 숙형(叔亨)이다. 참지의정부사 윤사수의 후손으로 해선군 윤승길의 손자이자 평양부서윤(平壤府庶尹)을 지낸 윤진(尹璶, 1568~1624)의 아들이다. 품계가 정5품 통덕랑(通德郞)에 올랐으나 실직(實職)에는 나가지 않았다.

묘는 사곡리 밤골의 우측 나지막한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은 쌍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근에 새롭게 단장하였다. 좌측의 윤창운 봉분에 사각 호석을 두르고, 그 앞으로 혼유석(높이 16, 폭 73.5, 두께 46), 상석(높이 23, 폭 122.5, 두께 88), 향로석(높이 50, 폭 33, 두께 27)을 배설하였다. 호석에는 “해평후인(海平後人) 윤창운지묘(尹昌運之墓)”라는 각자가 있다. 또한 우측의 부인 봉분에도 사각 호석을 설치하고, 그 앞에 혼유석(높이 21, 폭 84.5, 두께 47), 상석(높이 33, 폭 160.5, 두께 96), 향로석(높이 55, 폭 31.5, 두께 28)을 진설하였다. 호석에는 “공인(恭人) 전주이씨(全州李氏) 부(祔)□ □ □ ”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묘역의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각 1쌍식 서 있다.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입은 문인석은 얼굴에 미소 짓고 있으며, 후수(後綬)와 폐슬(蔽膝)의 문양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망주석의 상단에는 운각(雲角)과 염우(廉隅)를 올리고, 주신에는 다람쥐를 조각하였다.

또한 봉분의 우측에는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219)가 건립되어 있다. 팔작지붕의 개석에는 기왓골을, 방부(높이 41, 폭 102, 두께 68)에는 복련(覆蓮)과 당초문(唐草紋)을 장식하였다. 애석(艾石)의 비신(높이 135, 폭 62.5, 두께 28.5) 앞면에 “통덕랑(通德郞) 해평(海平) 윤공창운숙형지묘(尹公昌運叔亨之墓) 공인(恭人) 전주이씨(全州李氏) 부좌(祔左)”라고 대자(大字)로 피장자의 신분을 밝힌 후, 나머지 면에 전이조참의(前吏曹參議) 이여(李畬, 1645~1718)가 지은 음기를 손서(孫壻)이면서 진사(進士)인 허조(許錭)가 썼다. 건립연대는 “숭정기원무진후(崇禎紀元戊辰後) 오십칠년(五十七年) 갑자(甲子, 1684, 숙종 10) 팔월(八月) 일립(日立)”이며 상태는 완벽하다. 한편 봉분의 좌측에 방부원수 양식의 비석이 하나 더 세워져 있다. 화강암의 비신 앞뒤에 글을 새겼으나 마모가 진행되어 비의 정확한 명칭이나 성격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비문의 말미에 “시(옆) 경진(庚辰, 1700, 숙종 26) 이월(二月) 일(日) 손남(孫男) 세주(世周, 1642~1708) 이선군료유의(以先君了遺意) 읍지지(泣識之)”라는 기록이 있어 조성 시기와 지은이를 확인할 수 있다. 서자(書者)는 미상이나 전후사정으로 보아 묘역의 조성과 관련된 사연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윤창운 묘의 우측 구릉에는 성균진사(成均進士) 윤택우(尹澤雨)의 묘소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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