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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징 묘

□ 소재지 : 대신면 보통리
□ 시 대 : 조선

윤징(1430~1504)은 연산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무송이고 자는 청수(淸叟)이다. 보승낭장 윤양비의 6세손이자 지안성군사(知安城郡事) 윤충보(尹忠輔)의 손자이며 우정언 윤미견의 아들이다. 또한 문경공(文敬公) 허조(許稠, 1369~1439)의 외손(外孫)으로 관직에 출사하여 영원군수(寧遠郡守)를 지냈고 종2품 가선대부의 품계에 올랐다. 사후 아들인 윤사익이 귀하게 되어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었다.

묘는 무송윤씨세장지의 입구 좌측에 위치한다. 묘역은 최근에 새로 단장하면서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으며 옛 석물로는 상석과 복두공복을 입은 문인석만이 남아 있다. 묘역 바로 아래에 방부이수 양식의 신도비(총 높이 약 240)가 건립되어 있다. 이수(높이 69, 폭 102, 두께 27)의 앞뒤에는 두 마리 용이 하나의 여의주를 다투는 형국(雙龍爭珠)을 조각하였으나, 방부(높이 20, 폭 131, 두께 76)는 거의 매몰된 상태이다. 백대리석 비신(높이 151, 폭 87, 두께 19)은 산화되어 검게 변색되었다. 영성군(靈城君)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이 지은 비문은 마모가 극심하지만, 그의 문집인 『기재집(企齋集)』에 “증판서(贈判書) 윤공징(尹公澂) 신도비명(神道碑銘)”이라는 제목으로 글이 실려 있어, 윤징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다. 여성위(礪城尉) 송인(宋寅, 1516~1584)이 글씨를 쓰고 승정원우부승지(承政院右副承旨) 남응운(南應雲, 1509~1587)이 “증좌찬성(贈左贊成) 윤공지비(尹公之碑)”라 전액을 올렸다. 건립연대는 마모가 극심하여 파악이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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