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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 묘

□ 소재지 : 점동면 덕평리
□ 시 대 : 조선

윤제는 세종대의 무신으로 본관은 칠원이다. 안혜공 윤은경의 후손이자 보문각대제학 윤천효의 손자이며 낭장 윤광우의 아들이다. 관직은 정4품 호군(護軍)을 지냈으며 사후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황씨(黃氏) 부인과 혼인하여 1남 2녀를 두었으나, 부부 모두 정확한 생몰년은 미상이다. 또한 황씨 부인은 본관도 전하지 않는 실정이다.

묘는 덕평리 웃골의 동북쪽 구릉에 남서향(南西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상석(높이 19, 폭 131, 두께 123.5), 향로석(높이 38, 폭 24.5, 두께 23), 문인석(높이 212, 폭 60, 두께 48)의 옛 석물이 단촐하게 갖추어져 있지만, 혼유석은 매몰된 듯 확인되지 않는다. 단분(單墳)으로 구성된 봉분 앞에, 방부하엽 양식의 묘표(총 높이 165)가 건립되어 있다. 화강암의 비신(높이 98.5, 폭 4, 두께 30) 앞면에 “호군(護軍) 윤제지묘(尹齊之墓)”라고 고졸(古拙)한 해서체(楷書體) 글씨로 쓰여 있어 피장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으나 나머지 면에는 아무런 기사도 파악할 수 없다. 비신 위로 잘 말아 올린 하엽의 꼭대기에는 연봉(蓮峰)이 뚜렷하게 솟아 있다. 또한 복두공복을 착용한 육중한 덩치의 문인석은 옷소매가 양손을 모두 감싼 양식상의 특징이 있는데, 우측 문인석의 두부(頭部)는 절단된 것을 다시 접합해놓았다. 그리고 원형의 향로석이 장고(長鼓) 모양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편 묘역 바로 아래에는 토사의 유실을 막기 위해서 설치한 1단의 장대석이 횡으로 축조되어 있다.

윤제 묘의 서쪽 맞은편 구릉에는 조선초기의 유행대로 3단의 계체석 구조를 갖춰 남향(南向)으로 조성된 황씨(黃氏) 부인의 묘소가 있다.

옛 석물은 문인석(높이 120, 폭 34, 두께 31)만 단촐하게 남아 있을 뿐 망주석과 혼유석은 없고 상석과 향로석은 최근에 다시 시멘트로 제작한 것이다. 사각 호석(높이 27, 폭 367, 두께 450)으로 둘러 처진 봉분의 바로 앞에 화강암으로 만든 방부하엽 양식의 묘표(총 높이 111)가 건립되어 있다. 하엽의 우측 부분이 훼손되었으나 자세히 관찰해보면 조선초기에 유행하던 투구 모양의 하엽양식임을 짐작할 수 있다.

비신(높이 101, 폭 37.5, 두께 18.5)의 하단이 상단보다 폭이 넓어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그 앞면의 중앙에 옛스런 해서체 글씨로 “전호군(前護軍) 윤제(尹齊) 처(妻) 공인(恭人) 황씨지묘(黃氏之墓)”라 쓴 후 비신의 좌측에 “정통(正統) 십이년(十貳年, 1447, 세종 29) 구월(九月) 일(日)”이라고 새겨 놓아 정확한 입석 연대를 파악할 수 있다. 우측면과 뒷면에도 글씨가 있는 듯하나, 이끼가 많이 껴 있고 박락이 심하여 더 이상의 판독은 힘든 상태이다. 복두공복을 착용한 문인석은 신체비례에 비해서 얼굴이 크고 눈, 코, 귀가 두텁게 표현되었으며 옷소매가 양손을 모두 감싼 양식상의 특징이 있으나 하단이 많이 매몰되었다. 황씨 부인의 묘는 묘제가 원형대로 잘 남아 있고 묘표도 절대연대를 파악할 수 있어 조선초기 묘제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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