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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 묘

□ 소재지 : 대신면 보통리
□ 시 대 : 조선

윤옥(1511~1584)은 선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무송, 자는 자온(子溫), 호는 동리(東里)이다. 보승낭장 윤양비의 8세손이자 공호공 윤사익의 아들이며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의 문인이다. 1510년(중종 5)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에 나아가 동부승지와 양주목사를 지냈다. 1561년(명종 16)에 딸이 순회세자(順懷世子, 1551~1563)의 빈(嬪)이 되었으나, 세자가 13세의 어린나이로 요절하여 국구(國舅)가 되지는 못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공조참판에 이르렀으며 사후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묘는 무송윤씨세장지 내에 위치한다. 묘역에는 상석(높이 28, 폭 166, 두께 101), 향로석(높이 21, 폭 31, 두께 32), 문인석(높이 171, 폭 58, 두께 46)의 옛 석물이 단촐하게 갖추어져 있다. 망주석과 동자석은 근래에 도난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사대부 묘역에 가장 기본적으로 설치되던 망주석이 남아 있지 않고, 상석의 좌우에서 동자석이 서 있었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묘역의 좌우에 시립(侍立)하고 있는 문인석은 복두공복을 착용하고 있는데, 홀(笏)을 잡은 손가락과 의습선(衣褶線)에서 선조대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묘역의 우측 아래에는 방부운수 양식의 신도비(총 높이 약 208)가 건립되어 있다. 운수(높이 53, 폭 86, 두께 32)의 앞면에는 구름속의 해를, 뒷면에는 구름속의 달을 조각하였으나 방부(높이 14, 폭 137, 두께 83)에는 아무런 문양도 장식하지 않았다. 백대리석의 비신(높이 141, 폭 82, 두께 21)은 마모가 심하지만 비신 상단에 각자된 “증우의정(贈右議政) 윤공(尹公) 신도비명(神道碑銘)”이라는 전액이 뚜렷하여 윤옥의 신도비임을 파악할 수 있다. 비문은 대사간 이성중(李誠中, 1539~1593)이 찬(撰)하고 사헌부장령 이충원(李忠元, 1537~1605)이 서(書)하였다. 전액을 올린 인물은 성균생원이라는 신분만 확인될 뿐 정확한 성명을 알 수 없으나 일본 천리대(天理大) 소장의 『여주목고적병록성책(驪州牧古蹟並錄成冊)』에 의하면 정탁(鄭擢)이 쓴 것으로 되어 있다. 비문은 비신의 앞면에만 새겼으며 건립연대는 “만력(萬曆) 십오년(十五年) 정해(丁亥, 1587, 선조 20)…입(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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