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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익 묘

□ 소재지 : 대신면 보통리
□ 시 대 : 조선

윤사익(1478~1563)은 명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무송, 자는 언례(彦禮)이다. 보승낭장 윤양비의 7세손이자 영원군수(寧遠郡守) 윤징(尹澂, 1430~1504)의 아들이다. 여러 관직을 거쳐 1542년(중종 37)에 공조참판을 제수받았고 곧이어 공조판서로 승차되어 『중종실록』 편찬의 편수관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나이 칠십이 넘어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공호(恭胡)이다.

묘는 무송윤씨세장지의 동쪽 구릉에 위치한다. 묘역에는 상석(높이 162, 폭 102, 두께 28), 향로석(높이 50, 폭 30, 두께 30), 망주석(높이 167, 폭 45, 두께 45)의 옛 석물만이 단촐하게 있을 뿐 문인석은 전하지 않는다. 봉분 앞에는 방부규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140)가 세워져 있으나 비신(높이 113, 폭 51.5, 두께 16)의 박락이 극심하고 상태가 좋지 못하다. 화강암으로 만든 방부(높이 27, 폭 88, 두께 53)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묘역 바로 아래에 방부운수 양식의 신도비(총 높이 약 219)가 건립되어 있다. 방부는 거의 매몰되었으나 비문의 상태는 양호하여 판독이 가능하며 운수(雲首, 높이 68, 폭 90, 두께 34)에는 구름 문양을 가득 장식하였다. 비제(碑題)를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숭정대부(崇政大夫) 행공조판서(行工曹判書) 겸지경연춘추관사(兼知經筵春秋館事)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증시(贈諡) 공호(恭胡) 윤공(尹公) 신도비명병서(神道碑銘幷序)”라 표기하여 비석의 종류가 신도비임을 알 수 있으며, 전액은 “공조판서(工曹判書) 윤공지비(尹公之碑)”라 올렸다. 지중추부사 김귀영(金貴榮, 1520~1593)이 찬(撰)한 비문을, 당대의 명필 여성군(礪城君) 송인(宋寅, 1517~1584)이 송설체(松雪體)로 유려하게 썼으며 공조참판 남응운(南應雲, 1509~1587)이 전액을 담당하였다. 비문은 백대리석의 비신(높이 151, 폭 76, 두께 25) 앞면에만 서술하였고 그 말미에 “융경(隆慶) 사년(四年) 경오(庚午, 1570, 선조 3) 십일월(十一月) 일(日)”이라는 건립연대를 기록하였다.

무송윤씨세장지 내에는 1975년 외지에서 옮겨 온 것으로 추정되는 무송윤씨 장령공(掌令公) 여주파(驪州派)의 가족 묘지와 석물들이 세워져 있다. 뿐만 아니라 무송 윤씨로 판단되는 무명 묘소도 몇 기 더 산재해 있다. 또한 시신은 화장하고 묘표만을 이건해 온 듯, 세장지내의 소로변에는 선교랑(宣敎郞) 윤황(尹滉, 1622~1687)의 묘표(총 높이 약 154)와 선공감부봉사(繕工監副奉事) 윤종건(尹宗建, 1648~1709)의 묘표(총 높이 약 143)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두 묘표 모두 방부원수의 양식을 갖추었으나 비문의 마모가 매우 심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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