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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개 묘

□ 소재지 : 금사면 하호리
□ 시 대 : 조선

윤개(1494~1566)는 명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옥(汝沃), 호는 회재(晦齋) 또는 서파(西坡)이다. 감찰어사(監察御使) 윤순(尹純)의 후손으로 현감을 지낸 윤이손(尹李孫, 1467~?)의 아들이다. 1516년(중종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저작으로 등용되었으며 1519년(중종 14) 이조좌랑으로서 사림(士林)을 등용함에 힘썼다. 그러나 이해에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김안국 등이 물러나자 이에 관련되어 외직으로 좌천되었다가 1538년(중종 33) 다시 복직되어 충청도관찰사·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 1543년(중종 38) 형조참판에 재직시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 편찬에 관여하였다. 명종 즉위 후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가 수렴첨정 할 때 윤원형(尹元衡, ?~1565)이 일으킨 을사사화(乙巳士禍)에 가담하여 보익공신(保翼功臣) 2등에 책록되고 영평군(鈴平君)에 봉해졌다. 이후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으며 1563년(명종 18)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일찍이 김안국을 사사(師事)하였으나 학문에는 깊지 못하다는 평을 들었다.

묘는 하호리 웃거리마을의 뒤쪽 구릉에 조성된 파평윤씨세장지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은 원형의 호석이 설치된 쌍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측의 윤개 봉분 앞에는 묘표(총 높이 165), 혼유석(높이 3, 폭 88, 두께 52), 상석(높이 24, 폭 157, 두께 97)을 진설하였으며, 우측의 부인 봉분 앞에도 묘표(총 높이 158), 혼유석(높이 3, 폭 68, 두께 37), 상석(높이 24, 폭 162.5, 두께 83)의 석물을 동일하게 갖추어 놓았다. 또한 묘역의 중앙에 장명등(높이 162, 폭 79, 두께 79.5)을 안치한 후 그 좌우로 망주석(높이 203, 폭 63, 두께 64)과 문인석(높이 173, 폭 55.5, 두께 46)을 세워 놓았다. 장명등의 화사석(火舍石)엔 사방으로 화창(火窓)을 내었고, 문인석은 복두공복을 착용하였다. 망주석의 주신에는 차일의 끈을 묶을 수 있게 쇠고리를 걸었던 구멍이 나 있으며, 하단에는 팔각형의 대석(臺石)을 마련하였다. 전반적으로 모든 석물에 이끼가 많이 껴 있고 박락이 심한 상태이다. 윤개의 묘표 앞면에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좌의정(議政府左議政) 겸영경연사(兼領經筵事)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 세자부(世子傅) 윤공지묘(尹公之墓)”라 되어 있고, 부인 묘표 앞쪽에 “정경부인(貞敬夫人) 이씨지묘(李氏之墓)”라 쓰여 있어 피장자의 신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두 음기(陰記)나 건립연대는 기록하지 않았다. 두 묘표 사이에는 1981년에 새로 건립한 묘표가 서 있다.

윤개 묘 바로 위에는 아버지인 현감(縣監) 윤이손(尹李孫)의 묘가 있고, 우측에는 증손자 찰방(察訪) 윤지백(尹知白)의 묘가 위치한다. 그리고 묘역 아래의 서파영당(西坡影堂)에는 근래에 제작한 윤개의 초상화를 보관하고 있으며, 묘역 입구에는 1968년에 건립한 신도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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