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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성 묘

□ 소재지 : 가남읍 대신리
□ 시 대 : 조선

유지성(1422~1478)은 성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무숙(茂叔)이며 초명(初名)은 맹하(孟河)이다. 쌍락정(雙樂亭) 유경손(柳敬孫, 1395~1445)의 차남이자 고양군수 유맹기의 동생이며 직장(直長) 권득(權得)의 사위이다. 관직은 전생서령(典牲署令)을 지냈고 사후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묘는 대신리 삼은농장의 서쪽 구릉에 동향(東向)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형 유맹기 묘의 좌측 구릉에 위치한다. 묘역은 쌍분(雙墳)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봉분 사이에는 1983년에 건립한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가 서 있다. 오석의 비신 앞면에 “증가선대부(贈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완산(完山) 유공지묘(柳公之墓) 배증정부인(配贈貞夫人) 안동권씨부우좌(安東權氏祔于左)”라 새겨져 있어 부부 합장묘임을 파악할 수 있다. 뒷면에 기록한 음기(陰記)의 말미에 “홍치(弘治) 십삼년(十三年) 경신(庚申, 1500, 연산군 6) 구월(九月) 일(日) 입갈(立竭)”과 “가선대부(嘉善大夫) 겸동지경연(兼同知經筵) 춘추관사(春秋館事)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권건(權健) 찬(撰)”이라는 기사가 있어 원래 묘표의 음기 내용을 그대로 재각(再刻)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서자(書者)는 미상이다. 그리고 좌측 봉분 앞에 호석(중앙 폭 225, 좌측 폭 150, 우측 폭 70)을 설치한 후 상석(높이 80, 폭 138, 두께 19)과 상석받침석(높이 10, 폭 115, 두께 17)을 배치하였는데, 앞서 나온 유맹기 묘와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조각 수법과 장식성은 훨씬 우수하다. 또한 우측 봉분에도 호석, 상석, 상석 받침석을 거의 동일한 양식과 규모로 진설하여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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