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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팽조 묘

□ 소재지 : 북내면 장암리
□ 시 대 : 조선

원팽조(1473~1542)는 중종대의 무신으로 본관은 원주, 자는 노선(老仙)이다. 중서시랑(中書侍郞) 원온(元溫)의 후손이자 음성현감 원효이의 손자이며 부사직 원중륙의 아들이다. 1496년(연산군 2) 무과급제 후 출사하여 품계가 종2품 가선대부에 오르고 관직이 충청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묘는 장암리 미죄골의 북서쪽에 위치한 나지막한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10, 폭 75, 두께 47), 상석(높이 29, 폭 165, 두께 29), 고석(높이 26, 폭 33, 두께 33), 향로석(높이 48, 폭 33, 두께 30), 문인석(높이 182, 폭 60, 두께 52)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복두공복을 착용한 채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는 문인석은 복두 끈을 턱 밑으로 야무지게 묶었으며, 팔꿈치 부분의 겹쳐진 옷 주름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복두 뒤쪽의 각(脚)은 입각(立脚)으로 세웠고, 허리에는 요대(腰帶)를 걸쳤다. 또한 단분(單墳)으로 구성된 봉분의 앞쪽에는 방부원수 양식의 묘표가 건립되어 있다. 물결무늬가 아름답게 펼쳐진, 회청색 대리석의 비신 앞면 중앙에 고졸(古拙)한 예서(隸書)로 “유명조선(有明朝鮮) 가선대부(嘉善大夫)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 원공(元公) 휘팽조묘(諱彭祖墓)“라 쓴 후, 뒷면에 음기(陰記)를 기록하였으나 찬서자는 남기지 않았다. 건립연대는 “가정(嘉靖) 이십일년(二十一年) 임인(壬寅, 1542, 중종 37) 구월(九月) 일립(日立)”이고 추기(追記)는 “숭정후(崇禎後) 삼을유(三乙酉, 1765, 영조 41) 오월(五月) 일(日)”에 8세손 동부승지 원경렴이 추지(追識)하였으나 역시 서자(書者)는 미상이다. 방부의 윗면에는 복련을 조각하고 아랫면의 사방에는 안상(眼象)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한편 중종대(1506~1544)에 남겨진 예서(隸書) 작품은 매우 드물어 묘표 앞면에 쓰인 글씨는 조선시대 서예사(書藝史)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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