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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몽정 묘

□ 소재지 : 북내면 장암리
□ 시 대 : 조선

원몽정(1711~1792)은 정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 자는 성임(聖任)이고 좌의정 원두표의 손자이자 용인재 원만춘의 아들이다. 명망이 있어 누차 주부(主簿)와 사어(司禦)를 제수하였으나 취임하지 않았으며 1790년(정조 14)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에 올랐다. 81세의 장수를 누렸으며 사후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묘는 장암리 원주원씨세장지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34, 폭 75, 두께 39), 상석(높이 39, 폭 130, 두께 90), 향로석(높이 40, 폭 40, 두께 34), 망주석(높이 160, 폭 37, 두께 37)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피장자의 신원을 각자한 상석 앞에, 당초문(唐草紋)과 운족(雲足)이 조각된 향로석을 배설하였다. 한편 봉분의 우측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갈(총 높이 약 263)이 건립되어 있다. 원임(原任) 이조참판(吏曹參判) 이재(李縡, 1680~1746)가 지은 묘갈문의 갈제(碣題)는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원공(元公) 묘갈명병서(墓碣銘幷序)”이며 아들인 인천부사(仁川府使) 원명익이 글씨를 썼다. 비신(높이 146, 폭 60, 두께 25.5)의 상단에 “첨지(僉知) 원공(元公) 묘갈명(墓碣銘)”이라 올린 전액은 중국 당(唐)의 명필 이양빙(李陽氷) 전자(篆字)를 짜집기한 것이다. 추기(追記)는 손자인 원경순이 추지(追識)하였으나 서자(書者)는 기록하지 않았다. 묘갈문은 비신의 사면(四面)에 각자하였으며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재을묘(再乙卯, 1735, 영조 11) 이월(二月) 일건(日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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