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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순 묘

□ 소재지 : 북내면 장암리
□ 시 대 : 조선

원경순(1701~1765)은 영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 자는 도이(道以), 또는 도이(道而)이다. 좌의정 원두표의 현손이자 진천현감(鎭川縣監)을 지낸 원명직(元命稷, 1683~1725)의 아들이며 문경공(文敬公) 이여(李畬, 1645~1718)의 외손이다.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후 출사하여 부교리와 응교(應敎) 등의 청요직을 번갈아 지냈으며 1746년(영조 22) 대사간에 제수되었다. 1753년(영조 29) 외직으로 나아가 양주목사가 되었으나, 곧 중앙으로 복귀하여 대사간·대사헌을 거쳐 1759년(영조 35) 도승지가 되었다. 이후 강화유수를 역임하고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영조의 계비(繼妃)인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외삼촌으로 왕의 총애가 깊었으며, 사후 영조가 친히 제문을 지어 치제(致祭)하였다.

묘는 장암리 새골의 서측 구릉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근래에 북내면 지내리에서 이장하면서 원형이 크게 변형되었다. 묘역에는 상석(높이 45, 폭 144, 두께 85), 향로석, 망주석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묘표는 이장시 비신이 훼손된 듯, 봉분의 우측에 개석과 방부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봉분 앞에 놓인 상석의 앞면에 “대종백(大宗伯) 정헌(正獻) 원공휘경순묘(元公諱景淳墓) 정부인(貞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 부좌(祔左) 수원최씨(水原崔氏) 부전(祔前)”이라 표기되어 있어 피장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묘역 아래에 방부개석 양식의 신도비(총 높이 약 295)가 건립되어 있다. 비제(碑題)가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자헌대부(資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 겸경연(兼經筵) 의금부(義禁府) 춘추관사(春秋館事)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증시정헌(贈諡正獻) 원공(元公) 신도비명서(神道碑銘序)”로 된 비문은 척질(戚姪)인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민이현(閔彛顯, 1750~1793)이 짓고, 백대리석 비신(높이 176, 폭 68, 두께 28)의 사면에 종친부전부(宗親府典簿) 황운조(黃運祚, 1730~?)가 글씨를 썼다. 전액은 불초남(不肖男) 전사도시첨정(前司䆃寺僉正) 원우손(元羽孫, 1727~1799)이 올렸으며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삼경술(三庚戌, 1790, 정조 14) 삼월(三月) 일립(日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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