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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렴 묘

□ 소재지 : 북내면 장암리
□ 시 대 : 조선

원경렴(1704~1767)은 영조대(英祖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도원(道源), 호는 소재(疎齋)이다. 좌의정 원두표(元斗杓, 1593~1664)의 현손이자 대호군(大護軍) 원명설(元命卨, 1687~1708)의 아들이다. 정혜공(貞惠公) 이규령(李奎齡, 1625~1694)의 손녀사위로 31세인 1734년(영조 10) 음보(蔭補)로 처음 참봉(參奉)에 제수되고 1757년(영조 33) 목사(牧使)에 재직시 정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북도병사(北道兵使)와 경기수사(京畿水使)를 거쳐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이르렀으며 원흥군(原興君)에 봉해졌다.

묘는 장암리 아랫말에 위치한 원주원씨세장지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7, 폭 94, 두께 34), 상석(높이 47, 폭 148, 두께 90.5), 고석(높이 21, 폭 37, 두께 37), 향로석(높이 43, 폭 35, 두께 30), 망주석(높이 202, 폭 40, 두께 40), 석양(높이 69, 폭 48, 두께 128)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상석 앞면에는 피장자의 신원을 각자하였으며, 망주석의 주신에 원형 고리를 조각하였다. 석양은 머리의 뿔과 눈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다리 골격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봉분의 좌측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205)가 세워져 있다. 백대리석 비신(높이 137, 폭 59.5, 두께 16.5)의 앞면에 부부합장임을 밝히고, 비신의 뒷면에 묘표음기를 각자하였으나 찬서자와 표제는 기록하지 않았다. 건립연대는 “숭정후(崇禎後) 삼경인(三庚寅, 1770, 영조 46) 이월(二月) 일립(日立)”이다.

묘역의 우측 아래에 방부개석 양식의 신도비(총 높이 약 339)가 건립되어 있다. 개석에는 다각지붕을 올리고 방부의 비석 받침을 사용하였는데, 외관상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것이 주목된다. 내제(內弟)되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최재흥(崔載興)이 지은 비문을 사위인 창녕(昌寧) 조윤량(曺允亮, 1733~1790)이 경건하게 썼다. 조윤량은 정조대의 명필인 송하(松下) 조윤형(曹允亨, 1725~1799)의 사촌 동생으로 글씨에 능했으며 특히 해서에 뛰어났다. 전액은 불초손(不肖孫) 원익손(元翼孫, 1722~1783)이 “명조선(明朝鮮) 병조참판(兵曹參判) 원흥군(原興君) 원공(元公) 신도비명(神道碑銘)”이라 올리고 비제(碑題)를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 원흥군(原興君) 원공(元公) 신도비명병서(神道碑銘幷序)”라 하여 비석의 종류가 신도비임을 알 수 있다.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삼무자(三戊子, 1768, 영조 44) 오월(五月) 일립(日立)”이며 비신(높이 160, 폭 61.5, 두께 47.5)의 상태는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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