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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홍부 묘

□ 소재지 : 대신면 상구리
□ 시 대 : 조선

우홍부(?~1414)는 태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단양이다. 고려 때 향공진사(鄕貢進士)가 되어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낸 우현(禹玄)의 후손으로 적성군(赤城君) 우길생(禹吉生)의 손자이자 충정공(忠靖公) 우현보(禹玄寶, 1333~1400)의 아들이다. 고려말 문음(門蔭)으로 출사(出仕)하여 1382년(고려 우왕 8) 장복서령(掌服署令)에 재직시 예부시(禮部試)에 급제하였다. 1392년(고려 공양왕 4) 전의감부령(典醫監副令)에 있을 때, 이성계(李成桂) 일파에 의해 직첩(職牒)을 몰수당하고 멀리 유배되었다가 곧 방면, 1398년(태조 7) 직첩을 환급받았다. 1400년(정종 2) 정안군(靖安君, 뒤의 태종)에게 회안군(懷安君)의 음모를 고변하여 1412년(태종 12)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추록되고 예안군(禮安君)에 봉해졌다. 1413년 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 사건에 관련되어 고신(告身, 관직 임명장)을 몰수당했으나, 이듬해 태종의 특은(特恩)으로 다시 환급받았다. 시호는 정평(靖平)이다.

묘는 상구리 양지말의 뒤쪽 구릉에 동향(東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후분(前後墳)으로 조성되어 있는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11, 폭 77, 두께 40), 상석(높이 37, 폭 135, 두께 88), 향로석(높이 59, 폭 28.5, 두께 29), 문인석(높이 123, 폭 34, 두께 30)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복두공복을 입은 문인석을 비롯하여 모든 석물에 이끼가 많이 껴 있고, 박락이 심한 상태이다. 상석의 앞면에는 “예안군(禮安君) 예조판서(禮曹判書) 우홍부(禹洪富) 배(配) 정부인(貞夫人) 왕씨지묘(王氏之墓)”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한편 뒤쪽 봉분의 좌측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가 건립되어 있다. 비신의 앞면에 피장자의 신원을 쓰고, 뒷면에 16대손 전감역(前監役) 우현태(禹顯泰)가 지은 10행의 음기를 17대손 우효설(禹孝卨)이 썼다. 건립연대는 “계축(癸丑) 시월(十月) 일(日)”로만 되어 있는데, 전후 사정으로 보아 1913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묘역 아래에는 우홍부 재실인 보금재(寶錦齋)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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