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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규 묘

□ 소재지 : 대신면 송촌리
□ 시 대 : 조선

우승규는 세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단양이며 예안군 우홍부의 아들이다. 관직은 세자좌익찬(世子左翊贊)을 시작으로 호조좌랑(戶曹佐郞)을 거쳐 순창군수(淳昌郡守)에 이르렀으며 사후에 예조참판을 증직 받았다. 정확한 생몰년은 미상이다.

묘소는 마야우마을 뒷산 구릉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상석(높이 29, 폭 128, 두께 78), 혼유석(높이 10, 폭 70, 두께 33), 고석(높이 17, 폭 27, 두께 27), 향로석(높이 25, 폭 28, 두께 22), 문인석(높이 165, 폭 43, 두께 35)의 옛 석물이 구비되어 있으며, 봉분에 팔각형의 호석(護石)을 설치하였다.

묘역의 좌우에 시립하고 있는 문인석은 신체비례가 균형을 이루고 관복의 옷자락이 손을 덮는 양식상의 특징이 있어, 세종대를 전후한 시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상석 우측에는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183)가 입석되어 있는데, 방부(높이 10, 폭 82, 두께 47)는 거의 매몰되었고 팔작지붕의 개석(높이 33, 폭 82, 두께 62)엔 간략히 외양(外樣)만을 갖추었을 뿐 별다른 문양을 장식하지 않았다. 오석의 비신(높이 140, 폭 52, 두께 19) 앞면에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좌익찬(行左翊贊) 증예조참판(贈禮曹參判) 우공승규지묘(禹公承圭之墓) 정부인(貞夫人) 밀양박씨(密陽朴氏) 부(祔)”라고 써서 부부합장임을 알 수 있다. 음기는 16세손 우효봉(禹孝鳳)이 찬(撰)하고 18세손 우제구(禹濟九)가 서(書)하였다. 건립연대를 “임오(壬午) 구월(九月) 일(日)”이라고만 기록하고 연호를 표기하지 않아 정확한 입석 시기를 판단할 수 없지만, 전후사정으로 보아 1942년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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