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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효첨 묘

□ 소재지 : 가남읍 금당리
□ 시 대 : 조선

어효첨(1405~1475)은 성종대의 문신이자 대학자로 본관은 함종, 자는 만종(萬從), 호는 귀천(龜川)이다.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한 어변갑(魚變甲, 1381~1435)의 아들이며 평도공(平度公) 박은(朴訔, 1370~1422)의 사위이다. 1429년(세종 11)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이듬해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에 선임되면서 관직에 나갔다. 이어 기사관(記事官)이 되어 『태종실록(太宗實錄)』의 편수(編修)에 참여하였으며 1443년(세종 25)에는 집현전교리가 되어 서연관(書筵官)으로서 문명을 날렸다. 세조 즉위 후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고, 이조참판과 지중추원사를 거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재직시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성리학(性理學) 연구에 힘쓰고 예법(禮法)을 존중하여 풍수지리설을 철저히 배척하고 척불(斥佛)을 주장하였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묘는 금당리 함종어씨세장지 내에 위치한다. 원래 서울시 고덕지구에 있었으나, 1982년 도시 개발로 인해서 지금의 위치로 이장한 것이다. 묘역에 설치된 봉분의 호석, 상석, 향로석, 장명등은 모두 최근에 추설(追設)한 것이며, 옛 석물로는 문인석(높이 187, 폭 45, 두께 43) 1쌍 만이 남아 있다. 복두공복을 착용한 문인석은 눈 끝이 가늘고 입이 튀어 나왔으며, 관복 소매가 양손을 모두 감싼 양식상의 특징이 있다. 봉분의 좌측에는 어효첨의 묘표(총 높이 109.5)가 그리고 우측에는 정경부인 반남 박씨의 묘표(총 높이 124)가 세워져 있는데, 모두 방부규수(方趺圭首)의 동일한 양식을 갖추고 있다. 어효첨 묘표의 앞면에는 단정한 글씨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문효공(文孝公) 어공지묘(魚公之墓)”라 쓰고 뒷면에는 3행의 간단한 음기(陰記)를 새겼으며 건립연대는 “성화(成化) 을미(乙未, 1475, 성종 6) 삼월(三月) 십이일(十二日) 조()”이다. 또한 반남 박씨 묘표는 마모가 되었지만 판독이 가능하며 건립연대는 “홍치(弘治) 오년(五年, 1492, 성종 23) 삼월(三月) 십오일(十五日) 안조(安)”이다.

세장지 입구의 비각 내에 사후 259년 만에 조성된 방부개석 양식의 신도비(총 높이 347)가 서 있다. 방부(높이 66, 폭 168, 두께 110)와 개석(높이 35, 폭 160, 두께 102)은 외관만 간단히 다듬고, 아무런 장식도 꾸미지 않은 특징이 있다. 원임(原任) 의정부우의정(議政府右議政)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이 찬(撰)한 비문을 10대손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 어유봉(魚有鳳, 1672~1744)이 근서(謹書)하여 백대리석 비신(높이 246, 폭 103, 두께 46)의 전·후면에 각자하였으며 비제(碑題)를 “유명조선(有明朝鮮) 숭록대부(崇祿大夫)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증대광보국숭록대부(贈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 겸영경연(兼領經筵) 홍문관(弘文館) 예문관(藝文館) 춘추관(春秋館) 관상감사(觀象監事) 순충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補祚功臣) 함종부원군(咸從府院君) 시문효(諡文孝) 어공(魚公) 신도비명병서(神道碑銘幷序)”라 하여 어효첨의 신도비임을 밝히고 있다. 비신의 상단에 올린 전액은 10대손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어유구(魚有龜, 1675~1740)가 썼으며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재갑인(再甲寅, 1734, 영조 10) 구월(九月) 일립(日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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