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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세겸 묘

□ 소재지 : 가남읍 금당리
□ 시 대 : 조선

어세겸(1430~1500)은 연산군대(燕山君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함종, 자는 자익(子益), 호는 서천(西川)이다. 판중추부사 어효첨의 아들이자 양숙공(襄肅公) 어세공(魚世恭, 1432~1486)의 형이며, 좌의정을 지낸 박은(朴訔, 1370~1422)의 외손(外孫)이다. 1456년(세조 2)에 동생 어세공과 함께 식년문과에 급제, 이듬해에 봉상시녹사(奉常寺錄事)를 시작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이조정랑을 거쳐 우승지에 이르렀다. 1469년(예종 1)에는 강순(康純, 1390~1468)·남이(南怡, 1441~1468)의 역모를 잘 처결하여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책록되고 함종군(咸從君)에 봉해졌다. 1480년(성종 11) 건주위(建州衛) 정벌(征伐)의 승전(勝戰)에 관한 주문사(奏聞使)로서 명(明)에 가서 외교관으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이후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좌찬성을 거쳐 1495년(연산군 1)에 우의정, 이듬해에 좌의정에 올랐다. 1498년(연산군 4) 부원군(府院君)으로 진봉(進封)되고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학문에 뛰어나 한때 문형(文衡)을 담당하였으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임원준(任元濬) 등과 「쌍화점(雙花店)」, 「이상곡(履霜曲)」 등의 악사(樂詞)를 개찬(改撰)하기도 하였다. 저서로 『서천집(西川集)』이 전하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묘는 금당리 함종어씨세장지 중심부에 위치한다. 1982년 서울시 고덕지구에서 이장하면서 상석(높이 27, 폭 134, 두께 91)과 문인석(높이 218, 폭 51, 두께 48)의 옛 석물은 옮겨 왔으나, 봉분의 호석, 향로석, 장명등은 새로 신설하였다. 문인석의 얼굴은 눈이 두툼하고 귀가 큰 특징이 있으며, 복두공복을 착용하고 있다. 봉분의 좌·우측에는 방부원수 양식을 갖춘 어세겸과 그 부인 능성 구씨의 묘표가 각각 세워져 있다. 어세겸 묘표(총 높이 135)의 앞면에는 “함종부원군(咸從府院君) 문정공지묘(文貞公之墓)”라 하고 뒷면에는 “공성어(公姓魚) 휘세겸(諱世謙) 자자익(字子益) 함종인(咸從人) 일자익렴(一子益濂) 일녀적권경우(一女適權景祐) 이녀적김광후(二女適金光厚) 홍치(弘治) 십사년(十四年, 1501, 연산군 7) 삼월(三月) 십이일(十二日) 조()”라 음기를 새겨 놓았다. 또한 부인의 묘표(총 높이 130) 전면에는 “정경부인(貞敬夫人) 구씨지묘(具氏之墓)”라 하고 뒷면에 “적능성(籍綾城) 문정공배(文貞公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구달충지녀(具達忠之女) 홍치(弘治) 십육년(十六年, 1503, 연산군 9) 시월(十月) 일(日) 안조(安)”라 써 놓아 피장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묘표 모두 백대리석의 비신을 사용하여 박락이 심하고 검게 산화되었으나 글씨의 각이 깊어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하다. 한편 세장지 입구의 비각에는 1990년에 조성한 신도비가 어효첨신도비와 함께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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