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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윤 묘

□ 소재지 : 대신면 후포리
□ 시 대 : 조선

신은윤(1458~1508)은 중종대(中宗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영산, 자는 상경(商敬)이다. 판밀직사 신천의 6세손이자 석성현감 신중린의 아들이다. 1476년(성종 7) 사마시에 합격하고 관직에 출사하여 사헌부지평과 장례원판결사를 지냈다. 그리고 중종반정(1506)에 가담하여 채수(蔡壽, 1449~1515) 등과 함께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책록되고 취산군(鷲山君)에 봉해졌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글씨에 능했으며 특히 전서에 뛰어났는데, 그가 쓴 임원준(任元濬) 신도비(1500, 연산군 6)의 전액은 『동국금석평(東國金石評)』에서 ‘체재(體裁)’가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후포리 서촌마을의 뒷산 구릉에는 영산신씨세장지가 자리 잡고 있다. 신은윤 묘는 세장지의 맨 좌측에 쌍분(雙墳)으로 조성되어 있다. 좌측의 신은윤 봉분 앞에 방부하엽(方趺荷葉) 양식의 묘표(총 높이 약 128)와 상석(높이 27, 폭 152, 두께 87)을 설치한 후, 우측의 부인 봉분 앞에도 동일하게 묘표(총 높이 약 128)와 상석(높이 21, 폭 123, 두께 75)을 배설하였다. 신은윤 묘표는 완전 마모되었지만 부인 묘표는 비신의 앞면에 “정부인(貞夫人) 죽산안씨지묘(竹山安氏之墓)”라 쓰고 뒷면에 “정덕(正德) 십일년(十一年, 1516, 중종 11) 춘이월(春二月)…입(立)…”이라 새겨, 입석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 묘역의 중앙에는 최근 신설한 장명등이 있고, 좌우에는 복두공복을 입은 당당한 풍채의 문인석(높이 173, 폭 68, 두께 57) 1쌍이 시립하고 있다. 또한 묘역에는 최근에 세운 신은윤의 행장비(行狀碑)와 장명등 재건립의 사유비(事由碑)가 입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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