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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목 묘

□ 소재지 : 가남읍 화평리
□ 시 대 : 조선

신목(1649~1706)은 숙종대의 인물로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자심(子深)이며 고려태사(高麗太師) 신숭겸(申崇謙, ?~927)의 후손이다. 문과급제한 신익수(申翼壽)의 증손이고 신후명(申厚命)의 아들이나 진사(進士) 신우명(申佑命, 1613~1665)에게 입양되었다. 몸가짐이 성실하고 효행이 뛰어나 관찰사가 누차 나라에 정포(旌褒)를 청하기도 하였다. 생전에 관직을 지내지 못했으나, 사후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추증되었다. 아들 신석효(申錫孝)도 효도로 정려문을 하사받은 효자 집안이다.

묘는 화평리 평리마을의 남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상석(높이 38.5, 폭 116, 두께 73), 향로석(높이 30, 폭 23, 두께 21), 망주석(높이 140, 폭 30, 두께 30)의 옛 석물이 간소하게 갖추어져 있다. 묘역의 우측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229)가 건립되어 있다. 백대리석으로 만든 비신(높이 153, 폭 53.5, 두께 21.5)의 앞면에 큰 예서(隸書)로 “증통정대부(贈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 신공(申公) 휘목지묘(諱穆之墓) 증숙부인(贈淑夫人) 경주이씨(慶州李氏) 부(祔)”라 되어 있어 피장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비신의 나머지 삼면에 음기(陰記)를 각자(刻字)하였으나 표제(表題)는 기록하지 않았다. 비문은 신목의 8세손이자 여주 출신의 이름난 유학자인 직당(直堂) 신현국(申鉉國, 1869~1949)이 친구인 파산(坡山) 윤응선(尹膺善, 1854~1924)에게 부탁하여 지었으며, 글씨는 덕수(德水) 이규현(李奎顯)이 예서체(隸書體)로 정성들여 썼다.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육경오(六庚午, 1930) 사월(四月) 일립(日立)”이며 상태는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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