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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필 묘

□ 소재지 : 산북면 후리
□ 시 대 : 고려

서필(901~965)은 고려 광종대(光宗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이천이며, 통일신라 말 아간(阿干)을 지낸 서신일(徐神逸)의 아들이다. 이천의 호족(豪族)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내의령(內議令)에 이르렀다. 광종이 쌍기(雙冀)와 같은 귀화인들을 지나치게 우대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직언(直言)과 간쟁(諫諍)을 서슴지 않았는데, 광종은 이를 대부분 수용하여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사후 삼중대광태사내사령(三重大匡太師內史令)에 추증되었으며 광종의 묘정(廟廷)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아들 장위공(章威公) 서희(徐熙, 942~998)와 손자 원숙공(元肅公) 서눌(徐訥, 972~1042)이 모두 재상을 지내, 일약 고려초기의 유력한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묘는 후리 양지말의 뒤쪽에 위치한 상두산(象頭山) 구릉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상석(높이 35, 폭 210, 두께 230), 문인석(높이 128, 폭 41, 두께 35), 무인석(높이 122, 폭 41, 두께 30)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쌍분으로 구성된 묘역은 1989년에 새로 개수(改修)하면서 원형이 크게 변형된 상태이다. 사각형의 호석을 각각 두른 봉분의 사이에 방부원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121.5)가 세워져 있다. 대리석의 비신(높이 96.5, 폭 49, 두께 17.5) 앞면에 큰 해서로 “고려(高麗) 삼중대광태사내사령(三重大匡太師內史令) 시정민(諡貞敏) 서공필지묘(徐公弼之墓)”라고 써서 피장자의 신원을 밝히고 있으나, 나머지 삼면(三面)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건립연대가 없어 정확한 조성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조선후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방부원수의 묘표 양식과 단정하게 쓰인 동국진체풍(東國眞體風)의 글씨가 조선후기에 크게 유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묘역의 좌우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이 각 1쌍식 시립해 있다. 문인석은 복두공복을 입고, 무인석은 투구를 쓴 채 긴 칼을 땅에 짚고 서 있으나 박락이 심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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