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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응보 묘

□ 소재지 : 흥천면 귀백리
□ 시 대 : 조선

서응보(1763~?)는 순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인경(麟卿)이다. 효희공(孝僖公) 서종제(徐宗悌, 1656~1719)의 현손이자 예조판서(禮曹判書) 서유녕(徐有寧)의 아들이다.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관직에 나아가 배천군수[白川郡守]를 역임하였다.

묘는 귀백리 백양동 마을의 뒤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23, 폭 90, 두께 35), 상석(높이 42, 폭 135, 두께 82), 고석(높이 28, 폭 39, 두께 39), 향로석(높이 40, 폭 36, 두께 25.5), 망주석(높이 166, 폭 35, 두께 36)의 옛 석물이 간소하게 진설되어 있다. 19세기 초의 유행대로 장식성보다는 기능성을 강조한 석물들이다. 묘역의 우측 아래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약 266)가 건립되어 있다. 다각지붕의 개석(높이 77, 폭 90, 두께 83)에 무문(無紋)의 방부(높이 46, 폭 93, 두께 74)를 사용하였는데, 외관상 거의 정방형에 가깝다. 비신(높이 143, 폭 47, 두께 35)의 앞면에 큰 해서로 “조선국(朝鮮國) 증숭정대부(贈崇政大夫)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행통훈대부(行通訓大夫) 배천군수(白川郡守) 달성(達城) 서공휘응보지묘(徐公諱應輔之墓) 정경부인(貞敬夫人) 경주김씨(慶州金氏) 부우(祔右)”라고 하여 피장자의 신원을 밝히고 있다. 불초남(不肖男) 이조판서(吏曹判書) 서희순(徐憙淳, 1793~?)이 지은 음기는 비신의 나머지 삼면(三面)에 각자(刻字)하였으나 표제(表題)와 서자(書者)는 기록하지 않았다. 또 아들인 예조판서(禮曹判書) 서대순(徐戴淳)이 추기(追記)한 글이 있으며,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사기유(四己酉, 1849, 헌종 15) 윤사월(閏四月) 일립(日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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