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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원 묘

□ 소재지 : 여주시 가업동 산7-1
□ 시 대 : 조선
□ 지정사항 : 향토유적 제9호

박준원(1739~1807)은 순조대의 외척(外戚)으로 본관은 반남, 자는 평숙(平叔), 호는 금석(錦石)이다. 공조판서를 역임한 박사석(朴師錫)의 아들이며 지암(止菴) 김양행(金亮行, ?~1779)의 문인이다. 정조의 후궁으로 들어간 딸이 수빈 박씨(綏嬪 朴氏)가 되어 1790년(정조 14) 훗날의 순조를 생산하자 호조참의에 임명되었다. 이어 각조의 판서를 거쳐 총융사(摠戎使), 금위대장(禁衛大將) 등의 주요 요직을 역임한 후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가업동 마을의 뒤쪽 구릉에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묘역은 원형대로 잘 보전되어 있으며 혼유석(높이 25.5, 폭 115, 두께 51), 상석(높이 45, 폭 170, 두께 104.5), 향로석(높이 54.5, 폭 44, 두께 41), 고석(높이 35, 폭 48, 두께 48), 망주석(높이 188, 폭 36, 두께 36), 석양(높이 74, 폭 45, 두께 127)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각 석물은 당대의 유행대로 문양 장식을 자제하고, 기능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묘역의 좌우에 배치된 석양은 균형 잡힌 몸매에 사실적으로 조각된 뛰어난 작품이다.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약 314)는 봉분의 우측에 건립되어 있다. 비신(높이 175, 폭 68, 두께 34)의 앞면에 피장자의 신원만 쓰고 나머지 삼면(三面)에는 아무런 기록을 하지 않았다. 양식이나 조각 수법으로 보아 박준원의 사후 곧바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묘역 입구의 비각(碑閣)에는 총 높이 약 436㎝의 장대(長大)한 신도비가 안치(安置)되어 있다. 무문(無紋)의 방부(높이 101, 폭 178, 두께 121)에 팔작지붕 개석(높이 약 88, 폭 169, 두께 111)을 올려놓았다. 비신(높이 247, 폭 101, 두께 39)은 최상급으로 알려진 충청도 남포(藍浦)의 오석(烏石)을 사용하였다. 외손(外孫)인 순조가 친히 비문을 짓고 전액을 “증대광보국숭록대부(贈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 시충헌(諡忠獻) 박공(朴公) 신도비명(神道碑銘)”이라 올렸으며, 둘째아들 박종경(朴宗慶, 1765~1817)이 글씨를 썼다.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사기사(四己巳, 1809, 순조 9) 오월(五月) 일립(日立)”이며 상태는 완벽하다. 비각은 약간의 개보수(改補修)를 거쳤지만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박준원은 순조의 외조(外祖)라는 특수한 신분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의 묘와 신도비는 역대 최고의 장인(匠人)들을 참여시켜 최대의 비용을 투자한 대역사(大役事)였을 것으로 추정되어, 조선시대 묘제(墓制)와 석조미술사(石造美術史)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리고 신도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각도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당대의 중요한 건축물중 하나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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