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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 묘

□ 소재지 : 대신면 가산리
□ 시 대 : 조선

박인(1520~1587)은 선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밀성이고 자는 숙여(肅汝) 호는 묵재(默齋)이다. 밀성군(密城君) 박척(朴陟)의 후손이자 밀령위 박갱 현손이며 부사직 박순령의 아들이다.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평소 행실이 독행(篤行)하였다. 1552년(명종 7)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69년(선조 2) 서사(筮仕)로 관직에 진출하여 돈령부직장(敦寧府直長)을 지낸 후 충청도 진잠(鎭岑)과 평안도 삼등(三登)의 현령을 역임하였다.

묘는 가산리 재개울마을의 서쪽 구릉에 위치한 밀성박씨세장지 내에 위치한다. 옛 지명은 당곡(堂谷)이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9, 폭 94, 두께 34), 상석(높이 24, 폭 140.5, 두께 84), 고석(높이 16, 폭 29, 두께 29), 향로석(높이 31, 폭 33, 두께 26.5), 동자석(높이 106, 폭 38, 두께 34), 문인석(높이 205, 폭 61, 두께 50)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상석의 좌우에는 동자석이 향꽂이를 양손에 공손히 잡고 서 있으나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한 상태이다. 선조대의 유행대로 복두공복을 단정히 착용한 문인석은 홀(笏) 위에 턱을 대고 있으며, 공복의 밑자락에는 신발의 끝부분이 살짝 드러나 있다. 봉분의 앞쪽에 방부원수 양식의 묘표(총 높이 158)가 있으나 마모가 극심하여 비신(높이 132, 폭 57, 두께 17) 앞면의 큰 글씨 몇 개만 판독된다. 족보에 의하면 묘갈문(墓碣文)을 완양부원군(完陽府院君) 이충원(李忠元 1537~1605)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방부의 앞쪽에는 2칸 좌우에는 1칸씩의 안상(眼象)을 마련하였으며 윗면에는 복련(覆蓮)을 장식하였다. 한편 2001년 봉분의 우측 앞으로 방부이수(方趺螭首) 양식의 새로운 묘표를 중수(重修)하였다. 오석(烏石)의 비신 앞면에 “박혁거세왕(朴赫居世王) 오십삼세(五十三世) 밀성(密城) 호묵재(號默齋) 박공휘인지묘(朴公諱寅之墓) 배(配) 숙부인(淑夫人) 선산김씨(善山金氏)”라 써 놓아 부부 합장묘임을 파악할 수 있다. 뒷면에는 5행의 음기(陰記)를 간략히 기록하였다.

세장지에는 이외에도 부사직 박순령, 창락도찰방 박관, 승사랑 박문충, 부사직 박익겸, 증참의(贈參議) 박진규(朴晋圭, 1633~1687),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 박선(朴宣) 등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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