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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무 묘

□ 소재지 : 여주시 현암동
□ 시 대 : 고려

박경무는 고려 공민왕대(恭愍王代)의 무신으로 본관은 밀성이다. 충선왕(忠宣王)때 밀성군(密城君)에 봉해진 박척(朴陟)의 후손이자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박윤문(朴允文)의 손자이며 전법판서(典法判書) 박밀양(朴密陽)의 아들이다. 고려후기 충정왕(忠定王)이 황음무도(荒淫無道)하여 정치가 혼탁해지고 나라가 점점 어지러워지자, 당시 중랑장이던 박경무는 충혜왕(忠惠王)의 동모제(同母弟)인 공민왕을 추대(推戴)하여 즉위시키고 그 공으로 병부참정익대공신(兵部參政翊戴功臣)에 봉해졌다. 평소 지절(志節)이 뛰어나 조정에서는 ‘궁중의 범’이라고 칭했다고 전하며 공민왕의 총애를 받아 ‘경의(敬義)’라는 이름과 함께 시(詩)를 특별히 하사받기도 하였다. 퇴임 후에는 여주 강상(江上)에 돌아와 남은 여생을 보냈으나 정확한 생몰년은 미상이다. 사후 삼중대광문하시중(三重大匡門下侍中)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민(忠敏)이다.

묘는 현암동 수촌마을의 뒤쪽으로 뻗어 내린 싸리산(152.8m)의 남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각종 석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옛 석물은 혼유석(높이 23, 폭 82, 두께 37.5), 망주석(높이 163, 폭 34.5, 두께 33), 문인석(높이 141, 폭 60, 두께 23)이 남아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최근에 신설한 것이다. 복두공복을 착용한 문인석은 얼굴에 비해 귀가 크고, 관복 소맷자락의 아랫부분이 좌우로 넓게 펴진 양식상의 특징이 있어 조선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팔각 망주석은 문양이 전혀 없어 조선후기에 추설(追設)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직사각형 호석(護石)을 두른 봉분 앞에는 방부원수(方趺圓首) 양식의 묘표가 건립되어 있다. 비신의 앞면에 2행의 큰 해서(大楷)로 “고려(高麗) 중랑장(中郞將) 박공경무지묘(朴公敬茂之墓) 현군(縣君) 파평윤씨(坡平尹氏) 부(祔)”라 쓰여 있어 부부 합장묘임을 파악할 수 있다. ‘현군’은 박경무의 위계(位階)에 따른 부인의 봉호(封號)이다. 뒷면에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재계묘(再癸卯, 1723, 경종 3) 팔월(八月) 일(日)”이라는 연대가 있으나 음기(陰記)는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방부의 윗면에는 문양을 장식하지 않았고, 아랫면의 앞쪽에는 2칸 당초문(唐草紋)을 좌우에는 1칸 당초문을 조각하였으나 뒤쪽은 새기지 않았다. 한편 봉분 우측에는 은진(恩津) 송재욱(宋在郁)이 지은 묘표문을 음각(陰刻)해서 1978년에 조성한 귀부이수(龜趺螭首) 양식의 새 묘표가 건립되어 있다.

이외에도 박경무 묘 아래에는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박문우(朴文祐, 1530~1602)의 묘가 있고, 좌측 구릉에는 예조정랑(禮曹正郞) 박돈(朴潡, 1564~1634)의 묘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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