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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진주 묘

□ 소재지 : 여주시 월송동
□ 시 대 : 조선

민진주(1646~1700)는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유문(孺文)이고, 대사헌을 지낸 민시중의 아들이며 송시열의 문인이다. 1673년(현종 14) 생원이 되고 1684년(숙종 10)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예조좌랑과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삭직되었다가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다시 복귀하여 대사간과 평안도관찰사를 지냈으며 1689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淸)에 다녀왔다. 이후 병조판서와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에 올랐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묘는 월송동 삼밭골 마을 입구의 도로변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매몰, 폭 80, 두께 매몰), 상석(높이 44, 폭 158, 두께 93.5), 고석(높이 27, 폭 35, 두께 35), 향로석(높이 47, 폭 39.5, 두께 35), 망주석(높이 180, 폭 37, 두께 35), 문인석(높이 196, 폭 62, 두께 54.5)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금관조복을 착용한 문인석은 얼굴에 미소를 짓고 홀(笏)을 단정히 잡고 서 있다. 뒷면에는 후수(後綬)와 폐슬(蔽膝)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숙종대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좌측 망주석의 주신에 달라붙은 다람쥐는 땅으로 내려가고, 우측 망주석의 다람쥐는 위로 향하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묘표가 없어 피장자의 정확한 신원을 파악할 수 없으나, 마을 주민의 증언과 족보의 자료를 통해서 민진주 묘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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