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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중 묘

□ 소재지 : 여주시 하거동 산21-8
□ 시 대 : 조선
□ 지정사항 : 향토유적 제4호

민정중(1628~1692)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대수(大受), 호는 노봉(老峰)이다.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민광훈(閔光勳, 1595~1659)의 아들이며 숙종(肅宗)의 계비(繼妃)인 인현왕후(仁顯王后)의 백부(伯父)이자 이조판서를 역임한 눌옹(訥翁) 이광정(李光庭, 1552~1627)의 외손(外孫)이다.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급제하여 전적(典籍)과 정언(正言) 등을 지냈으며 이후 대사간(大司諫)을 거쳐 각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1675년(숙종 1) 남인(南人)이 집권하자 장흥부(長興府)에 유배되었다가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서인(西人)이 재집권하자 좌의정에 임명되어 중앙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서인의 중심인물로 크게 활약하였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다시 서인이 남인에게 축출되자 벽동(碧潼)에 안치(安置)되었다가 죽었다. 사후 복관(復官)되어 효종(孝宗)의 묘정(廟廷)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묘는 상거동 민노봉의 남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은 원형대로 잘 보전되어 있으며 혼유석(높이 21, 폭 87, 두께 47), 상석(높이 35, 폭 155, 두께 96), 고석(높이 34, 폭 40, 두께 40), 향로석(높이 60, 폭 41, 두께 37), 망주석(높이 205, 폭 42, 두께 42), 문인석(높이 215, 폭 70, 두께 58), 배설석(높이 8, 폭 57.5, 두께 179)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특히 봉분에 팔각형의 호석(護石, 높이 53, 폭 478, 두께 518)이 설치된 것이 주목된다.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한 문인석은 신체 비례가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조각도 매우 사실적이다. 그리고 고석(鼓石)에는 나어두(羅魚頭)를, 향로석(香爐石)에는 운족(雲足)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배설석은 후손들이 제사 지내기 위해서 가져온 음식이나 그릇들을 펼쳐놓는 석물이다.

봉분 좌측에는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251)가 건립되어 있다. 비신(높이 147, 폭 60, 두께 53)의 앞면에 단정(端正)하게 쓰인 글씨를 통해서, 민정중과 두 부인이 합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묘표음기(墓表陰記)는 대시인(大詩人)이자 학자였던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기(記)하고 증손(曾孫)되는 민백남(閔百男, 1689~1755)이 서(書)하였다.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구십사년(九十四年) 신축(辛丑, 1721, 경종 1) 삼월(三月) 건(建)”이다.

묘역 입구에는 총 높이 약 385㎝에 이르는 방부개석 양식의 신도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비석 받침인 방부(높이 100, 폭 184, 두께 120)에는 화문(花紋)과 안상(眼象) 그리고 복련(覆蓮)을 장식해놓았다. 당대의 석학(碩學)인 도암(陶菴) 이재(李縡, 1680~1746)가 비문을 찬(撰)하고 동국진체(東國眞體)의 대가(大家)인 우산(盂山) 홍봉조(洪鳳祚, 1680~1760)가 서(書)하였으며 종자(從子)되는 민진원이 전액(篆額)을 올렸다. 비문은 비신(높이 229, 폭 106, 두께 49)의 사면(四面)에 각자하였으며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백십칠년(百十七年) 갑자(甲子, 1744, 영조 20) 사월(四月) 일립(日立)”이다. 민정중 묘와 신도비는 지금까지 원형대로 잘 보전되었고 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민정중의 신분이 인현왕후의 백부이자 좌의정을 역임한 인물임을 감안할 때, 본 유적은 조선시대 묘제(墓制)와 석조미술사(石造美術史)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현재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이외에도 민정중 묘의 주변에는 증이조판서(贈吏曹判書) 민안수(閔安洙, 1681~1708), 증좌찬성(贈左贊成) 민백징(閔百徵, 1707~1727), 증우의정(贈右議政) 민경혁(閔景爀, 1746~1815) 등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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