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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수 묘

□ 소재지 : 여주시 능현동
□ 시 대 : 조선

민우수(1694~1756)는 영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사원(士元), 호는 섬촌(蟾村) 또는 정암(貞菴)이다. 충문공 민진후의 아들이자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외증손(外曾孫)이며 농암(農巖) 김창협의 문인이다.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1726년(영조 2) 세자세마(世子洗馬)와 명릉참봉(明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곧 물러나와 학업을 닦았다. 이후 다시 출사(出仕)하여 사헌부지평을 지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사헌부대사헌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으며 해서와 행서는 양송체의 정수를 얻어 거의 양송과 핍진(逼眞)하였다. 송준길의 외증손답게 양송체를 완벽하게 구현해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사후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參贊)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유고로 『정암집(貞菴集)』이 남아 전한다.

묘는 능현동 능말의 뒤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매몰, 폭 89, 두께 매몰), 상석(높이 36, 폭 135, 두께 85), 고석(높이 19, 폭 33, 두께 33), 향로석(높이 33, 폭 37, 두께 30), 망주석(높이 156, 폭 37, 두께 37), 배설석(높이 매몰, 폭 78, 두께 159)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전반적으로 석물의 문양 조각을 간소화하였으나, 망주석의 주신(柱身)과 고석(鼓石)의 몸체에 쇠고리 장식을 달은 것이 주목된다. 봉분 좌측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약 211)가 건립되어 있다. 개석(높이 약 48, 폭 91, 두께 70)엔 팔작지붕을 얹었으며 무문(無紋)의 방부(높이 48, 폭 92, 두께 68)를 사용하였다. 오석(烏石)의 비신(높이 115, 폭 45.5, 두께 24) 앞면에 “조선국(朝鮮國) 사헌부대사간(司憲府大司諫) 증의정부좌참찬(贈議政府左參贊) 정암(貞菴) 민선생우수지묘(閔先生遇洙之墓) 정부인(貞夫人) 칠원윤씨(漆原尹氏) 부좌(祔左)”라고 써 피장자의 신원을 밝히고 있다. 오대손(五代孫) 행호조판서(行戶曹判書) 민영상(閔泳商, 1829~1901)이 근기(謹記)한 음기를 외오대손(外五代孫) 예조판서(禮曹判書) 이승오(李承五)가 비신의 삼면(三面)에 근서(謹書)하였으며 표제(表題)는 “문간공(文簡公) 부군(府君) 묘표음기(墓表陰記)”이다. 음기에 의하면 앞면의 큰 글씨는 문경공(文敬公) 이직보(李直輔, 1738~1811)가 서(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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