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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시중 묘

□ 소재지 : 능서면 오계리
□ 시 대 : 조선

민시중(1625~1677)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공서(公瑞), 호는 인재(認齋)이다.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민광훈(閔光勳, 1595~1659)의 아들이며 문충공(文忠公) 민정중(閔鼎重, 1628~1692)과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 1630~1687)의 백형(伯兄)이자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50년(효종 1) 생원시에 장원하고 1664년(현종 5)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서 장원급제하여 전적(田籍)을 제수받았다. 이후 이조좌랑과 교리를 거쳐 1670년(현종 11)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많은 치적을 올렸다. 1674년(현종 15) 대사헌에 재직시 현종이 붕어하여 고부청시승습겸사은부사(告訃請諡承襲兼謝恩副使)로 청(淸)에 다녀왔다. 귀국 후 형조참판을 지내다가 사직하였으며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묘는 오계리 숭계동마을의 북쪽, 야트막한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 폭 105, 두께 ?), 상석(높이 43, 폭 162.5, 두께 96.5), 향로석(높이 40, 폭 40, 두께 31), 고석(높이 27, 폭 38, 두께 38), 망주석(높이 193, 폭 41, 두께 40), 문인석(높이 202, 폭 64, 두께 57)의 옛 석물이 잘 갖추어져 있다.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입은 문인석의 장식이 화려하나 신체에 비해 머리가 더 큰 특징이 있다. 좌측 망주석의 세호(細虎)는 위로 향하고 우측 망주석의 세호는 아래로 내려가게 하여 장식의 변화를 주었다. 봉분의 우측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256.5)가 건립되어 있다. 회색 대리석의 비신(높이 157.5, 폭 76.5, 두께 35.7) 앞면에 단정한 해서로 “유명조선(有明朝鮮) 대사헌(大司憲) 증좌찬성(贈左贊成) 민공시중지묘(閔公蓍重之墓)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 풍산홍씨(豊山洪氏) 부좌(祔左)”라 써서 부부 합장묘임을 알 수 있다.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 1641~1721)가 찬(撰)한 묘표음기와 종자(從子) 좌의정 민진원(閔鎭遠, 1664~1736)이 지은 추기(追記)는 양송체(兩宋體)를 창안하여 조선후기 서단(書壇)에 큰 영향을 끼친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글씨로 집자(集字)하였다(集文正公同春堂宋先生書). 두 번째 추기는 증손(曾孫) 민백종(閔百宗, 1712~1781)이 기병서(記幷書)하였으며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삼경인(三庚寅, 1770, 영조 46) 팔월(八月) 일립(日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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