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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건 묘

□ 소재지 : 여주시 천송동
□ 시 대 : 조선

민건은 세조대(世祖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문경공(文景公) 민영모(閔令謨, 1112~1194)의 후손으로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민개(閔開, 1360~1396)의 손자이자 참판(參判) 민불탐(閔不貪)의 아들이다. 관직에 나아가 세조조(世祖朝)에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며 시호는 장절(章節)이다.

천송동에서 소지개 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좌측의 구릉에 자리 잡은 민건 묘가 나타난다. 묘역은 도로 공사로 인해 문인석 바로 앞까지 삭평(削平)된 상태이며 전후분(前後墳)으로 조성되어 있다. 각 봉분에 원형의 호석(護石)을 신설(新設)하였는데 뒤쪽의 민건 봉분 앞에는 방부하엽(方趺荷葉) 양식의 묘표(총 높이 143)를 세우고 상석(높이 23, 폭 157, 두께 99)을 놓았으며 앞쪽의 정부인(貞夫人) 전주 최씨(全州 崔氏) 봉분 앞에도 동일한 묘표(총 높이 96)와 상석(높이 21, 폭 129, 두께 66)을 배설하였다. 두 묘표 모두 마모가 극심하여 판독이 어려운 실정이나 부인 묘표 비신(높이 61, 폭 36.5, 두께 16)의 앞면에서 “……최씨(崔氏)”라는 글씨가 확인된다. 묘역의 좌우에 시립(侍立)하고 서 있는 문인석(높이 203, 폭 67, 두께 60)은 당시의 유행대로 복두공복을 착용한 채 육중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다.

민건 묘의 아래와 주변에는 최근에 건립한 아버지 민불탐(閔不貪)의 신도비와 그 후손 민홍식공적비(閔弘植功績碑)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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