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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 묘

□ 소재지 : 흥천면 귀백리 백양산
□ 시 대 : 조선

김환은 세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고려말의 충신으로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안렴사(按廉使) 김사렴(金士廉, 1335~1405)의 증손이자 지주사(知州事) 김우주(金遇周)의 아들이다. 상대(上代)의 고향인 오근(현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서 여주 땅으로 이거한 입향조이다. 1442년(세종 24) 사정(司正)에 재직시 친시(親試) 문과에서 급제하여 한림(翰林)과 주서(注書)를 거쳐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를 지냈다. 1450년(문종 원년) 5월, 사은사(謝恩使) 병조참판 조서안(趙瑞安)과 형조참판 안완경(安完慶) 등과 함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明) 황제가 내려준 세자(世子)의 면복(冕服)과 칙서(勅書)를 가지고 북경(北京)에서 귀국하여 전지(田地) 10결을 하사받았다. 1451년(문종 1) 8월, 보령현감(保寧縣監)을 지내다가 하직하니 임금이 인견(引見)하고 말하기를 “수령의 임무란 농사에 힘쓰게 하고 병졸을 훈련시키는데 불과할 따름이니, 네가 가서 공경히 행하라” 하였다. 또한 1469년(예종 1) 2월,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서 비로소 의식과 같이 정사를 보았다. 구치관(具致寬)이 아뢰기를 “이문과 한어(漢語)를 밝게 아는 자는 지금 단지 김환(金丸) 등 몇 사람뿐입니다. 만일 이들이 없으면 사대문서(事大文書)를 아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묘는 귀백리 백양산 능골의 안동김씨세장지 내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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