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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집 묘

□ 소재지 : 대신면 초현리
□ 시 대 : 조선

김창집(1648~1722)은 경종대(景宗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여성(汝成), 호는 몽와(夢窩)이며 영의정을 역임한 문충공(文忠公)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의 장남이다. 김창집의 형제는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을 비롯한 김창흡(金昌翕, 1653~1722), 김창업(金昌業, 1658~1721), 김창집(金昌緝, 1662~1713), 김창립(金昌立, 1666~1683)의 여섯이 있었는데 모두 학문과 시문에 뛰어나 세상에서 ‘육창(六昌)’이라 일컬었다. 1684년(숙종 10) 공조좌랑에 재직시 정시문과에 급제한 후 병조참의를 지냈고 이후 각 조의 판서와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당시 정국을 주도하던 노론의 핵심 인물로서, 1722년(경종 2) 목호룡(睦虎龍, 1684~1724)의 고변(告變)으로 일어난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이이명(李頤命, 1658~1722), 조태채(趙泰采, 1660~1722), 이건명(李健命, 1663~1722)과 함께 사사(賜死)된 노론 4대신 중의 한 명이다. 또한 조선후기 세도정치를 펼쳤던 안동 김씨는 모두 김창집의 직계 후손들이다. 사후 영조가 즉위하면서 신원(伸寃)되었으며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묘는 초현리 아랫새재마을의 좌측 구릉에 위치한 안동김씨세장지의 가장 윗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15, 폭 93, 두께 44), 상석(높이 41, 폭 146, 두께 91), 고석(높이 21, 폭 35, 두께 35), 향로석(높이 39, 폭 37, 두께 24), 망주석(높이 173, 폭 60, 두께 60), 배설석(排設石, 높이 8, 폭 42, 두께 184)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는데, 모두 장식성보다는 기능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봉분 앞에는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약 207)가 건립되어 있다. 오석(烏石)의 비신(높이 131, 폭 55, 두께 26) 앞면에 대예(大隸)로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영의정(領議政) 몽와(夢窩) 김공창집지묘(金公昌集之墓) 정경부인(貞敬夫人) 반남박씨(潘南朴氏) 부(祔)”라고 쓰여 있어 피장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삼면(三面)에는 아무런 기록도 없어 정확한 건립연대를 파악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안동김씨족보』의 김창집 조항에 “좌의정(左議政) 민진원(閔鎭遠) 찬표(撰表) 전면(前面) 남(男) 김제겸(金濟謙) 서(書)”라는 기사가 실린 것으로 보아, 원래 민진원(1664~1736)이 지은 묘표음기(墓表陰記)가 있었으나 새기지 못했음을 추정할 수 있고 앞면의 대예(大隸)는 아들 김제겸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세장지와 그 주변에는 충민공 김제겸, 충순공 김문근, 충정공 김성행, 장악원정 김이장, 증좌찬성(贈左贊成) 김태순(金泰淳) 등의 묘소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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