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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근 묘

□ 소재지 : 대신면 초현리
□ 시 대 : 조선

김문근(1801~1863)은 철종대(哲宗代)의 척신(戚臣)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노부(魯夫)이다. 장악원정(掌樂院正) 김이장(金履長)의 손자이자 목사(牧使) 김인순(金麟淳)의 아들이며 정문공(正文公) 김수근(金洙根, 1798~1854)의 동생이다. 1851년(철종 2) 철종의 국구(國舅)가 되어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에 봉해졌고, 이후 여러 요직을 거쳐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관직이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충순(忠純)이다.

묘는 초현리 아랫새재 마을 입구 우측의 나지막한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초장지(初葬地)는 과천(果川)의 갈현(葛峴)이었으나 1872년(고종 9) 지금의 위치로 이장(移葬)하였다. 묘역 아래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갈(총 높이 약 218)이 건립되어 있는데, 묘갈문은 철종이 친히 어제(御製)하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병국(金炳國, 1825~1905)이 왕명을 받들어 쓴 것이다.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사갑자(四甲子, 1864, 고종 1) 월(月) 일립(日立)”이며, 이장의 전말을 기록한 추기는 계유(癸酉, 1873, 고종 10)년에 전영의정(前領議政) 김병학(金炳學, 1821~1879)이 지병서(識幷書)하였다. 또한 묘갈문의 서두에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 증영의정(贈領議政) 시충순(諡忠純) 김공(金公) 묘갈명병서(墓碣銘幷序)”라는 갈제(碣題)를 표기해 놓아 비석의 종류가 묘갈임을 밝히고, 오석으로 만든 비신(높이 133, 폭 55, 두께 32)의 전면에는 피장자의 신분을 대예(大隸)로 써 놓았다. 한편 묘갈의 주변에는 기단석(基壇石)과 4개의 주초석(柱礎石)이 남아 있어 원래 비각(碑閣)이 있었음을 판단할 수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7, 폭 85, 두께 32), 상석(높이 43,폭 154.5, 두께 93), 고석(높이 30, 폭 46, 두께 46), 향로석(높이 41, 폭 38, 두께 28), 망주석(높이 145, 폭 35, 두께 35) 차일석의 옛 석물이 설치되어 있으나 양식이나 조각수법이 뛰어나지 못하다. 망주석 주변에 석양(石羊)을 세웠던 흔적이 남은 것으로 보아, 근래에 도난당한 듯하다. 전후사정으로 보아 장명등이나 기타 석물은 애초부터 마련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되어, 국구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석물을 간략히 갖추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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