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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주 묘

□ 소재지 : 가남읍 심석리
□ 시 대 : 조선

김구주(1740~1786)는 정조대의 척신(戚臣)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범(汝範), 호는 가암(可菴)이다. 오흥부원군(鰲興府院君) 김한구(金漢耉, 1723~1769)의 아들이며 영조의 계비(繼妃)인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오빠이다. 20여 세에 음보(蔭補)로 벼슬에 올랐으며 1762년(영조 38) 김상로(金尙魯, 1702~1766), 홍계희(洪啓禧, 1703~1771) 등과 왕세자(사도세자)를 무고하여 죽게 하고 이듬해 문과급제하여 부수찬(副修撰)이 되었으며 이후 좌승지를 거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1767년(영조 43) 정후겸(鄭厚謙, 1749~1776)과 함께 왕세손(王世孫)의 외조부(外祖父)인 홍봉한(洪鳳漢, 1713~1778)을 공격하여 왕세손의 지위를 위협함으로써 노론 내에 시파(時派)·벽파(僻派)의 당파가 싹트게 하고 벽파의 영수로 활동하였다. 1776년(정조 1) 홍인한(洪麟漢, 1722~1776), 정후겸과 결탁하여 정조를 해치려 한 사실이 드러나, 전라도 흑산도(黑山島)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나주(羅州)로 이배되고 다음 해 병사(病死)했다.

심석리 아랫공심이 마을의 서편 구릉에 묘소가 자리 잡고 있으며, 뒤쪽에는 여주정보산업고등학교가 위치한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27, 폭 88.5, 두께 44), 상석(높이 45, 폭 146, 두께 91), 고석(높이 20, 폭 38, 두께 38), 향로석(높이 33, 폭 38.5, 두께 28), 망주석(높이 187, 폭 40, 두께 38.5), 차일석(높이 10, 폭 16, 두께 17)의 옛 석물이 단촐하게 갖추어져 있다. 망주석의 대석(臺石)에는 운족(雲足)을 마련하였으며, 고석(鼓石)에는 고리 문양을 장식하였다. 묘표가 없지만 봉분 앞에 놓인 상석의 앞면에 “경주(慶州) 김공지묘(金公之墓) 덕수이씨(德水李氏) 부우(祔右) 반남박씨(潘南朴氏) 부좌(祔左) 병향(丙向)”이라는 각자(刻字)가 있어 피장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 김구주는 모두 두 명의 부인을 맞았는데, 첫 번째는 공조좌랑(工曹佐郞)을 지낸 이춘빈(李春彬)의 딸 덕수 이씨(德水 李氏)요, 두 번째는 박사경(朴師經)의 딸인 반남 박씨(潘南 朴氏)이다. 족보에 나온 묘소의 위치(墓驪州公心洞壬坐)와 후손의 증언에 의해서 묘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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